경치 좋은 시골에서 수업하기
쿵-
쿵-
쿵-
분명 아이들이 헷갈려하는 분사구문에 대한 수업 중이었다. 시골학교의 아이들은 대부분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고 올라오는 몇년지기 친구들 사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 사이에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의 차이는 현저했다. 특히 수학과 영어가 그랬다.
분명 중학교에서 배우고 올라와야 했던 분사구문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복습 중이었는데, 칠판에 판서를 하기 위해 색분필을 드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분명 대포소리였다.
"애들아, 저게 무슨 소리야? 대포 아니야?"
"괜찮아요, 선생님. 그냥 훈련 중이에요."
아이들은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는 듯 말했다. 동요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침착했고 그 침착함이 정말 의아했다.
"저런 소리 자주 들어?"
"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이 농업에 종사하신다. 부모님이 군인인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저런 대포소리가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밖에도 수업 중 밖을 내다보면 시골 특유의 풍경이 펼쳐진다.
모내기를 하는 어르신들이 기계를 이끌고 오는 모습이라던지, 그 뒤로 진득한 흙더미들이 온 도로 위를 사정없이 더럽히는 모습, 고층 건물이 없어 뻥 뚫린 푸른 하늘과 둥실 구름.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그림을 보노라면 바쁘게 돌아갔던 서울 생활도 아득해진다.
서울과 달리 이곳은 젊은 사람들이 없고 거의 없는 그들도 공무원들이다. 저녁 8시만 되면 사방이 온통 깜깜해지고 편의점은 '24시간'이라는 간판과 무관하게도 밤만 되면 셔터가 내려간다. 동네에는 아이들이 책을 살 서점조차 없고 가장 가까운 서점은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나오는 읍내에 있다. 그 버스도 배차간격이 한 시간씩이다.
그래서 이 학교의 젊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문제집과 책을 사주는 것을 좋아하신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어른이, 특히 선생님이 돕는 것이 당연해지는 이 곳. 아이들도 선생님이 주는 책과 문제집을 감사하게 받아든다. 공부하기 싫다고 칭얼거리면서도 새 책이라면 좋아라-하면서 얼른 받아들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왜 여기 아이들은 이토록 순수할까.
이런 환경이라서 그런걸까?
비록 이 곳에는 내 친구도 없고 서점도 없고 마을 도서관은 저녁 7시면 닫고 놀 곳도 없지만, 이런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이 곳이 바로 그 꿈에 그리던 학교가 아닐까?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놀 곳이 없다.
그 흔하디 흔한 피씨방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도 운동장을 떠나지 않고 축구를 하거나 야간자율학습을 신청해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다. 도시와는 달리 학원도 없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수업을 열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방과후 수업을 신청한다.
저녁 9시가 되면 학교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이 시골 학교는 이 곳에 사는 아이들로는 학교 정원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버스로 30-40분 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학교로 유치시키기 위해 셔틀버스를 계약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버스로 30-40분을 나간 곳이라고 하더라도 시골이기 때문에 마땅한 학교도 없기 때문이다. 열악한 교통시설 때문에 학교에 마을버스를 타고 등교할 뻔한 아이들이 학교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있었다.
셔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친구들은 그래서 야간자율학습이나 방과후 수업을 일부러 신청한다.
자율학습 감독을 하다가 아이들이 짐을 챙겨 집에 가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 그렇게 공부하기를 싫어하면서도, 자의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곳의 아이들은 또한 주위에 멘토로 삼을 만한 젊은 어른이, 교사밖에 없다.
그래서 그럴까?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너무 좋아했다. 복도에서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안기고, 교무실을 찾아와 사랑한다며 편지를 준다. 가끔은 사탕 같은 간식을 주기도 한다.
아무 이유없이, 그저 이 학교의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나를 좋아해주는 아이들을 볼 때면, 한 밤 중 찾아오는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다 떨쳐내고만 싶다.
그럴 힘을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