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된 선생님
내가 발령받은 고등학교는 작은 학교였다. 한 학년에 16명씩, 두 반이 개설되어 전교에 여섯 개 반만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전담을 맡았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아이들도 나를 경계하는 듯 했다. 좋은 어른으로서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할 터였다. 그러나 나는 담임 교사를 맡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교과 수업을 즐겁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진진진가' 게임이었다. 영어 수업 첫 시간에 나의 TMI를 쏟아내는 것이 사실 좀 부끄럽기도 했지만 신규 교사의 열정으로 나의 사생활을 탈탈 털어서라도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 진진진가 게임 (진실 네 문장, 거짓 한 문장을 적고 거짓 문장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임. 주제는 '나'에 대한 것)
1. 나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2. 나는 백 명 이상 앞에서 공개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3. 나는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돈을 받은 적이 있다.
4.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영문도 모르고 엎어치기를 당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흥미로워했다. 특히나 자극적으로 구성한 문장에 아이들은 구미가 당겼는데 저희끼리 키득거리며 웃었다.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몇 번 문장이 거짓이라며 토의를 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정답을 맞힌 아이가 거의 없었다.
"선생님은 코로나 시기 이전에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간 적이... 있어요!"
(콘서트 때 찍은 영상 보여주기)
아이들은 선생님이 콘서트에 가서 신나게 방탄소년단을 촬영한 영상에 환호했다. 여기저기 ARMY(방탄소년단 팬클럽)들이 손을 들며 자신도 팬이라고, 선생님이 부럽다고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이 중학생 때 현장학습을 갔는데, 한 남자 애가 일본 노래를 부르며 강당에서 공개고백을 했어요."
"선생님이 초등학생 때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장기자랑 연습을 했는데 가게 안에 계시던 어르신이 선생님을 안으로 부르시더라고요. 천 원을 주셨답니다. 공연을 잘 보셨다고..."
거짓은 4번 문장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추측이 틀렸어도 즐거워했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힘이 컸는지 케이팝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이 내게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웃고 나도 웃었다. 어쩌면 단절된 이곳에서 내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끈은 아이들이 아닐까-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