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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니 Jan 31. 2022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2017년 여름으로 떠난 여행

손바닥 만한 크기의 액자 속에 갇힌 인물들이 여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몇몇은 웃고 있었고 대개는 무표정이었다. 비장함이었으리라. 여자는 간신히 참아온 감정이 올라옴을 느낀다. 눈물을 글썽이며 마침내 그들의 대다수가 교사 혹은 학생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이를 악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매우 좋았다. 그들도 반복되는 지옥 같은 이곳에도 볕이 뜬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을까. 키가 작은 초록들이 서로 키를 재며 쭈뼛대고 있었고 그 사이를 억지로 끼어 들어온 철도가 지평선까지 맞닿아있었다. 철도 양 측에는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작은 오두막 같은 것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회상하려니 그것의 이름이 마치 오래된 동창 같다.




여자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랐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은 곳으로 향하는 입구.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간판에 여자는 생각에 잠긴다. 이 간판을 만들던 노동자들이 반항의 뜻으로 알파벳 B만 거꾸로 달아놓았다고 한다. 왜 나치는 저 알파벳을 고칠 생각을 안 했나-생각해보니 '그래 봤자 헛수고'라는 생각을 했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결국 나치는 망하고 저 거꾸로 된 B는 지금까지 이르러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둘러진 전기 철조망 . 이곳이 그들의 지옥이었다. 지옥은 용암으로 가득 차고 벌레가 몸을 갉아먹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평범했다. 작은 집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사이로  흙길은  관리되어 있었다. 집들에는 번호가 붙여져 있었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요주의 번호들이 있었다고 한다.  번호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회색이었다. 알파벳 E를 닮은 구조물이 있었다. 여자는 저게 뭘까 한참 고민했다.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고 차가워 보였다. 마침 가이드가 저게 바로 '침대'였다고 말해주었다. 여자의 고민이 무색해졌다. 깡마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저렇게나 좁은 곳에 들어가 잘 수 있었고 잔인한 사람들은 이리도 찬 곳에 사람들을 재울 수 있었다. 심지어 각 칸 당 한 명씩 자는 게 아니란다. 6~8명씩 잤다고 하는데,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참 고역이 아닐 수 없겠다 싶었다.

​​

다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처음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을 쌓아놓은 곳이 나왔다. 정리되지 않고 마치 쓰레기 더미인  '쌓아놓은' 것을 보아 군인들은 이들에게 결코 소지품을 돌려주고 지옥에서 꺼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같다. 사람들의 옷가지와 신발 크기를 살폈다. 어린아이들의 것도 많았다. 작은 책가방에서 낡은 서류가방까지, 그들은  지옥이 어떤 곳인지도 몰라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들을  가방 안에 고이 간직했을 것이다. 여자는 ' 안에 가족사진이라도 들어있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일을 준다고 해서 짐을 챙기고 열차를 탔는데 오자마자 옷을 벗기고 가방을 빼앗기고, ' 안에  가족사진이 있소.'라고 말하면 나치군이 대꾸는 해줬으려나 싶다. 마구잡이로 헤쳐진 물건들과 사람들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여자는 갑자기 슬퍼졌다. 그들의 평범한 물건들이 전시품이  계기가 생각났다.

​​​


가스실에 갔다. 벽에 이상한 자욱들이 가득했다. 그건 손톱자국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 네 마디가 사정없이 벽을 긁어대는 것만 같았다. 어느샌가 여자의 친구들은 말이 없었다. 옆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모두가 각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각자의 모국어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밖으로 나왔다. 흙길을 따라 쭉 걸었더니 나오는 담이 있었다. 십자가를 닮은, 그렇지만 교회에서 늘 보던 십자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은 것이 바닥에 뚝뚝 박혀있었다. 거기에 사람을 매달고 처형했다고 한다. 총알이 사람을 관통해 날아가서 담장에도 구멍이 가득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곳에 꽃을 두고 갔다.


​​

여자는 희생자들을 기록한 곳에 갔다. 아주 작은 액자 속에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갇혀있었다. 누군가는 언제 죽었는 지도 기록되어 있었지만 대개 죽은 연도는 나와있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름, 나이, 그리고 직업이 적혀있어  사람과 여자가 공감대를 형성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여자는  개인화를 잘하는 사람이라서 자신과 동갑인 학생만 보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보처럼 웃고 있는 사람만 봐도 울컥했다.​​


여자의 친구들이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는 자신은 여기서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사야겠다고 말했다. 함께 엽서를 고르러 갔다. 엽서에는 노동자들이 만든 철도가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날씨가 어두웠다. 여자가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햇볕이 뜨거웠다. 구름은 예뻤으며 강물 흘러가듯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여자는 가장 힘이 들던 때에, 수용소에서 샀던 그 엽서를 책상에 붙여두었다.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수용소에서 본 얼굴들 중 직업이 교사였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불의를 못 참고 다른 무언가를 지키려다가 그곳으로 끌려간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당시 지식인이란 이유로 끌려 온 것일까. 여자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 참으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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