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see Aug 21. 2017

<감히 어딜?!>
_1화. 아직 프롤로그

영국 워킹홀리데이 일상 로그 _ 유튜브 에세이 영상




1화. 아직 프롤로그 

/ 출국




  '39.4kg???'


- 잠시만요..기계가 잘못된 것 같은데... 어... 맞네요...?

-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 저희도 웬만하면 그냥 해드리는데... 이건 너무 초과돼서...





  고요한 새벽 4시. 

새로 산 노란 캐리어는 현관 앞에, 

아침에 입고 나갈 새 옷은 방 한 켠에, 

나는 포근한 이불 속에

......................는 개뿔. 

아침 9시에 집에서 나가야 될 사람이 아직도 거실 한복판에 캐리어를 훌러덩 펼쳐놓은 채, 

  ‘돼지코를 어디다 뒀더라?, 양말은 5켤레면 충분한가?’

하며 난장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외국물 좀 먹어 보겠다는 딸내미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곁을 지켜준다던 엄마는 기다리다 지쳐 이미 방에 들어가 주무신지 오래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만큼 계획대로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하겠다던 나는 어쩐지 떠나기도 전에 궤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기야, 대학을 졸업한 지 어언 4년이 지났지만 정규직은 커녕,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라는 허울 좋은 해외 도피(?)를 준비하는 지금의 나는, 이미 궤도를 넘어 우리 은하계를 벗어난 지 한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기왕 궤도를 벗어나는 거라면 감히 '보이저호'가 되어보자.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캐리어를 깔고 앉아 낑낑대며 간신히 지퍼를 채우자, 배웅해주러 온 남자친구가 집에 도착했다. 뭐... 얘도 내가 밤을 새우고 이제야 씻으러 간다는 게 그리 놀랍지 않은 모양이다. 밤새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던 그 많은 짐이 캐리어 안에 전부 들어간 것을 보고, 엄마는 새삼 그 가방이 무섭다고 했다. 그 무서운 가방을 끌고 드디어 공항버스에 오르자 밤새 쌓인 졸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순 없지. 왜냐하면 난 오늘을 위해 아껴둔 일회용 렌즈 샘플을 꼈으니까. 그렇게 안 꾸민 듯, 몹시 꾸민 공항 패션차림으로 인천공항에 입성했다. 비록 나를 맞이하는 수많은 팬들과 기자들은 없지만, 홀로 스포트라이트라도 비춰진 듯한 기분으로 자축하며 걸었다. 공항은 그런 곳이었다. 앞날이 걱정되는 수심 많은 백수가 ‘케 세라 세라’를 외치며 히죽 웃게 되는 그런 곳.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1화'의 한 장면

  고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식 식사를 거하게 마친 뒤, 여유롭게 수속을 밟으러 갔다. 그리고 여행은 늘 예상치 못한 일에서부터 시작되곤 하지. 사실 완전히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 예상이 빗나가길 바랄 뿐이었지... 어마어마한 캐리어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자 마침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다. 

  '39.4kg'

항공사 직원은 가끔 기계 상의 오류가 발생한다며 죄송하다 했지만... 나는 이미 자진 사죄 모드에 돌입했다. 결국 혹시는 역시가 되었고, 23kg으로 제한된 수하물 허용치를 넘어도 한참 넘은 이 짐을 어찌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추가 요금은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책들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영어도 배워야하는 판에 무슨 중국어 책이람? <서양미술사>라...예술은 보고 느끼는 거지.’

마음의 양식들은 생각보다 쉽게 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양식들을 비운 후에야, 일용할 양식을 비울 차례가 돌아왔다. 한국의 맛을 잊지 않겠다며 챙겨 온 불닭볶음면과 매운양념을 포기했다. 또 헤어드라이기처럼 없어도 딱히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그런 물건들을 한 두 개씩 빼냈다. 한바탕 무소유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24.2kg’이라는 애교 섞인 초과 용량이 직원 분의 관대함으로 통과되었다. 안도하려던 찰나, 이 다이어트의 잔재들을 혼자서 들고 돌아 갈 남자친구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 이런 날까지 민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스러웠다. 나의 출국이 명백한 해외 도피로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1화'의 한 장면

  한 순간에 짐 더미를 잔뜩 떠맡게 된 그에게는 마냥 로맨틱하지만은 않은 이별의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우리는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어느덧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문득 두근대는 내 심장이 설렘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나는 유리창에 코를 박고 점점 작아지는 육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분명한건, 설렘이든 두려움이든 나는 그 쫄깃함을 즐기고 있다고.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1화'의 한 장면

   2시간의 비행. 짧지만 꽤나 멀리 날아 온 여기는 중국 베이징. 긴긴 출국 심사를 기다려 드디어 도착한 베이징 도심 외곽의 무료 환승 호텔. 다음 날 오후에 출발하는 런던행 비행기로 갈아탈 때까지 홀로 하룻밤을 묵게 될 곳이다. 무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호텔이기에 기대하며 방으로 들어갔는데... 으응...? 마치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칙칙하고, 케케묵은 듯한 이 분위기는 뭐지? 게다가 내 캐리어는 이미 영국행 비행기에 실린 지 오래라서, 세면도구는 커녕, 갈아입을 옷 한 벌조차도 없는 이 난감한 상황. 옆방에서는 술에 취해 흥에 겨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낡은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하는 수 없이 꾀죄죄한 몰골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운 뒤 생각했다. 

  ‘이런 걸 불시착이라고 하는 건가?’ 



( Youtube 에서 '예능 다큐  <감히 어딜?!>'을 보실 수 있어요 ☞ https://youtu.be/eZaMSgh2l-A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