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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see Oct 09. 2017

<감히 어딜?!>
_3화. 이번 (런던)생은 처음이라

영국 워킹홀리데이 일상 로그 _ 유튜브 에세이 영상



3화. 이번 (런던)생은 처음이라

BRP 카드, 식사, 런던 도심 여행, 아르바이트




이쯤 되니 이상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앨리스가 왜 그렇게 겁도 없이 무작정 돌아다녔는지 알만 했다. 

정처 없이 걷는 것.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앨리스도 영국인이잖아?





  눈을 뜨니, 새벽 5시. 

남들 다 자는 야밤에 야식으로 라면을 끓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전형적인 국내산 올빼미인 내가, 

동창이 밝자마자 이불을 박차고 이토록 이른 아침을 맞이하다니. 완벽한 시차적응이었다. 

어쩌면 내 안의 생체리듬은 이 지구 반대편에 맞춰져있던 게 아니었을까?

...........라고 하기에는...

어느 힙합 가사처럼 런던의 '시차를 돈 주고 샀기 때문’에 사실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일찍 일어난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는 듯하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계획대로라면 첫날 아침인 오늘부터 바로 집을 구하러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이었을 뿐. 

시작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리는 건, 분명 나의 계획이 아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임시 숙소로 현지 USIM을 주문해놓았다. 그리고 엊그제 도착했다는 그 문제의 USIM이 배송 중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 고로, 당장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라면 웬만한 곳은 Wi-Fi가 빵빵 터져서 USIM 없이도 인터넷이며, 지도 검색이며 모두 이용할 수 있을 테지만, 여기는 엄연한 영국 땅이었다. 정상적인 폰도 가끔 길에서 데이터가 안 터지곤 하는 게 이곳 스타일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냥 무작정 집을 나섰다. 무계획도 계획이라고, 오늘 하루만큼은 런던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된 기분으로 지도 없이 런던을 누비기로 마음먹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어젯밤에는 무거운 캐리어로 인해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그저 얌전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 나는 두 손이 자유로운 백패커였기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 맨 앞자리를 사수했다. 모르긴 몰라도, ‘타요 버스’를 탄 어린이도 나만큼 신나진 않았을 거다. 

그래봤자 ‘타요 버스’는 1층이니까!ㅎㅎ 

게다가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이 무려 셜록 홈즈 ‘베이커가 B221’이라니! ‘신기한 스쿨버스’에 탄 기분이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그렇게 넋 놓고 버스 투어를 즐기다가, 문득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헷갈렸다. 급한 마음에 일단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가장 상냥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영어로 물어보려 쭈뼛거리고 있을 때, 세상에나! 어디선가 익숙한 ‘나랏말ㅆ미’ 들리는 게 아닌가! 

  “저 혹시 죄송한지만, ‘마가렛 스트릿 정류장’ 지나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국땅에서 훅 들어오는 구수한 훈민정음에 잠시 깜짝 놀란 젊은 한국인 여성분은 내게 아직 네 정거장쯤 더 가야한다고 알려주었다. 

  “혼자 여행오신 거예요?”

  “아니요, 워홀 왔어요~ 어제 도착해서 아직 지리를 잘 몰라요^^;”

도착한 지 고작 하루밖에 안됐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공감 백프로의 미소를 띠었다. 덕분에 나는 ‘교포 찬스’로 별 어려움 없이 우체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우체국에 온 이유는 영국 체류 허가증인 ‘BRP 카드’를 수령하기 위해서였다. 워홀러라면 영국 입국 후 반드시 10일 이내에 사전에 지정한 우체국 지점에서 이를 수령해야 한다. 일종의 외국인 주민등록증인 셈이다. 나는 두 달 전 비자 센터에서 이마를 훌러덩 깐 채로 찍은 굴욕적인 나의 증명사진이 과연 BRP 카드에 어떻게 찍혀있을지 내심 초조한 마음으로 접수처로 향했다. BRP 카드를 찾기 위해 서류더미를 한참 뒤지던 우체국 직원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나의 이름이 ‘Kim’이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아무래도 나는 ‘Kim’이 한국에서 굉장히 흔한 이름임을 알고 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몇 분 후... 

나는 터덜터덜 빈손으로 우체국을 나왔다. 직원이 한참동안 BRP 카드를 찾은 것은 내 이름이 흔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나의 BRP 카드는 그 곳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입국일’과 ‘BRP 수령 시작일’이 서로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게 하필 나의 경우였다. 그렇게 나는 4일 뒤에 다시 컴백하라는 허탈한 선고만 받은 채, 하는 수 없이 우체국을 나왔다. USIM도 그렇고, BRP 카드도 그렇고, 나에게는 ‘간혹’이 간혹이 아닌 듯싶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해외살이는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에 장착한 액션캠이 콘크리트 바닥에 뚝 떨어져버렸다. 

아놔, 하필 그 타이밍에 이것마저 망가질 게 뭐람.



  런던 도심의 전자 기기 및 카메라 상점은 보이는 대로 다 들어갔지만, 나의 고정 클립을 대체할 부품은 결국 구하지 못했다. 반나절을 아무 결실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속이 더 허했다. 마음 같아서는 보이는 식당마다 전부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직 집도 못 구한 상태에서 한정되어 있는 나의 자금 상황을 고려해볼 때 되도록 저렴한 식사를 해야 했다. 아직도 그 날 비싸서 사먹지 못한 닭다리 통구이가 눈에 선하다. 마트에서 파는 음식치고는 닭다리 한 개에 7파운드라는 거금이 적혀있어 차마 돌아서야 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 보고만 있자니, 세상 서러웠다. 나 여기서 제대로 먹고 살 수는 있는 걸까?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가난한 여행자들이 간단히 한 끼 식사를 때울 때 등장하는 단골메뉴 샌드위치. 첫 외식 메뉴는 런던의 샌드위치 카페 체인점인 ‘프레 타 망제’에서 샌드위치 한 개와 요거트 한 개를 사먹는 것으로 정했다. 식사하는 와중에도 촬영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액션캠과 오순도순 대화하는(?) 나의 생중계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카페 안에서는 Wi-Fi를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마침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낸 룸메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힐끔 나를 쳐다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여러분, 저에게도 사람 친구가 있어요.’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지도 없이 무작정 런던 시내를 누비는 건 역시나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룸메를 만나러 가는 그 미지의 여정은 꽤 즐거웠다. 소싯적에 ‘왜 나는 11살이 넘도록 해그리드가 데리러 오지 않는 걸까?’라며 스스로가 ‘머글’이란 사실에 시무룩해하던 <해리포터>의 열혈 팬으로서, 우연히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공연하는 일명 ‘해리포터 극장’을 발견했을 때의 그 환희란! (여전히 나는 기다리고 있어요, 해그리드.) 

그런가하면, 방송 꿈나무인 내게는 마치 ‘호그와트’에 버금가는 영국 방송국 ‘BBC’를 지나며 기념비적인 인증샷도 남겼다. 게다가 본토 버전의 <BIG ISSUE> 잡지를 구입하는 소소한 행복까지.

이쯤 되니 이상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앨리스가 왜 그렇게 겁도 없이 무작정 돌아다녔는지 알만 했다. 

정처 없이 걷는 것.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앨리스도 영국인이잖아?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꽤 오랜 시간 런던 도심을 헤매고 나서야 드디어 룸메를 만나, 방금 전까지 그녀가 일했던 아르바이트 카페로 다시 향했다. 알고 보니, 그녀가 일한 카페 역시 ‘프레 타 망제’의 다른 지점이었던 것. 그 곳의 카페 동료 직원들은 룸메를 따라 무료 음료 한 잔을 얻어 마시러 온 나를 유쾌한 미소로 환영해주었다. 나 역시 유창한 “Hi~!” 인사로 이에 답했다. 그들도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각국에서 온 나와 같은 워홀러들이었다. 격한 환대와 함께 달달한 무료 초코라떼 한 잔을 들고 나오면서, 이처럼 상냥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룸메가 부러웠다. 

절.대. 초코라떼 때문이 아니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룸메는 평일 오전에만 근무하며,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즐기는 삶을 택했다. 사실 그녀에게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모아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슬프게도 나는 그녀와 달리, 모아둔 돈이라고는 두 달이 지나면 금세 바닥 날 정도였기에 하루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했다. 아무래도 워홀러 신분이기에 정규직을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무슨 일이 되었든 간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또 다른 설렘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 내가 영국에서 구직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운 좋게도 일 년에 천 명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영국 워홀러에 선발되어, 이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다니. 비록 (아직!) 호그와트에는 입학하지 못한 한낱 머글이지만, 어찌됐든 해리포터의 고장인 영국에서 살게 되었으니 나름 마법 같은 일이 아닐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 또 런던 생활은 더더욱 처음인지라 하루하루가 서툴지만, 이 서툶이 마냥 설레 왠지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3화'의 한 장면



( Youtube 에서 '예능 다큐  <감히 어딜?!>'을 보실 수 있어요 ☞ https://www.youtube.com/watch?v=tdJ_WloXkW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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