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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see Sep 01. 2017

<감히 어딜?!>
_2화. 괜찮아, 외국인이야_(2)

영국 워킹홀리데이 일상 로그 _ 유튜브 에세이 영상



2화. 괜찮아, 외국인이야_(2) 

/ 도착, 교통, 숙소




  내가 만약 명왕성이었다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끝내 태양계 행성에서 탈락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도대체 내가 부족한 게 뭐가 있냐면서 

‘수.금.지.화.목.토.천.해.’ 끝에, 홀로 ‘명!’을 외쳐댔을까?

 

 아니면,

 

비교당하며 만년 꼴찌로 아등바등 붙어있느니, 

차라리 다른 취급을 당하더라도 탈퇴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홀가분해했을까?





  내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나보다 가장 먼저 그 나라의 땅을 밟는 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내 두 발이 아니라, 신발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첫 발을 내딛는 것에는 영 감흥이 없다. 대신에 나는 남몰래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냄새를 맡는 편이다. 그렇다. 이것도 다 촌스럽게 티 내는 거 맞다. 그래도 어쩌겠어, 다 티가 나는 걸. 굳이 외국이 아니라, 제주도에만 가도 물씬 풍겨오는 냄새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마저 사뭇 다른 냄새가 날 때, 나는 새삼 새로운 곳에 왔음을 실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의 첫 냄새는 다소 낯설었다. 딱히 낯설지 않은 게 몹시도 낯설었다. 같은 대도시여서 그런지 서울이랑 딱히 다른 냄새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고, 다만 밖에 비가 와서인지 하도 춥다는 영국의 초여름 날씨에 대비해 입고 온 후드 티가 따스하게 느껴진다는 점? 기분 탓인지 약간 습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그마저도 실내라서 그다지 습한 지도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참....... 낯설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2화'의 한 장면


  로즈는 비행기에 내린 직후부터 도착 기념샷이라며 연신 카메라를 들고 걷는 내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는지, 연신 웃어댔다. 괜찮아, 나는 외국인이니까. 

다정하게도 로즈는 나를 걱정해주며, 숙소가 어디인지, 지하철은 잘 탈 수 있는지 옆에서 계속 물었다. 나는 연신 ‘오케이~’라고 호탕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녀의 영국식 억양을 알아듣기에도 벅찼다. 수하물 벨트에서 내 캐리어를 찾은 뒤 로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입국장을 나가려던 찰나, 어찌 보면 그녀가 나의 첫 영국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 수하물 벨트 앞에서 캐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입을 다물고 있는 듯한 내 뚱뚱한 캐리어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이내 캐리어를 벌러덩 드러눕히고 그 어마무시한 봉인을 해제했다. 마침내 나는 검은 비닐봉지 꾸러미 속에서 ‘색동 비단 필통’ 한 개를 꺼냈다. 한쪽에서 쭈그리고 앉아 훌러덩 캐리어를 열어젖히고 있는 나를 발견한 로즈가 인사하며 지나칠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불러 세워 필통을 건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수줍게 말했다.

  “Actually, you are my first British friend. This is Korean traditional gift. I wanna give it to you. (사실, 네가 나의 첫 번째 영국인 친구야. 이건 한국 전통 선물인데, 받아 줄래?)”

그녀는 세상 부담스러운 이 고백에 환하게 웃어주며, 진한 서양식 포옹으로 내게 답했다. 사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이 선물을 주고 난 뒤였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면서, 자신의 SNS 주소를 적어주었다. 어찌 됐든 이제 런던에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 한국 오기 전,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면 줄 거라고, 한국 기념품을 사러 남대문 시장을 하루 종일 쑤시고 온 보람이 있다. 

거 봐요 엄마, 나 친구 사귈 수 있다니까.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2화'의 한 장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정직한 영어를 써가며 공항 직원에게 Wi-Fi 연결 도움을 청했다. 전 세계 어디든 인터넷만 되면 길 찾는 거야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기에 마치 서울인 것 마냥, 아주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자동 매표기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일회용 티켓을 뽑는 것도 식은 죽 먹기. 오히려 어려움은 원시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영국 지하철역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설이 낡아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최신식 설비가 없는 곳이 많았다. 게다가 캐리어도 모자라, 한 손으로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해 셀프 촬영까지 단행했으니 가는 길이 여간 고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외국인 소녀(?)가 보낸 무언의 눈길을 외면하지 않은 행인들의 도움 덕택에 임시 플랏(숙소)이 있는 ‘West Hamstead(웨스트 햄스테드)’에 큰 문제없이 도착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2화'의 한 장면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누가 보면 외국 생활 몇 년깨나 한 줄 알겠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임시 플랏 룸메를 처음 만났을 때가 딱 그랬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치는구나’ 생각하며 안도했던 내 마음을 그녀도 알았을까? 나를 위해 저녁을 만들어주겠다는 룸메를 따라 마트로 향했다. 그녀는 나보다 2년 먼저 워킹홀리데이를 온, 말하자면 워홀 선배였다. 내가 마트 구경에 어리둥절해할 때, 룸메는 익숙한 듯이 빠르게 식재료를 담았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고, 내가 이 큰 캐리어를 끌고 어떻게 걸어갈지 고민할 때도, 그녀는 이 정도 비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우산을 내 머리에 씌워주며 쿨내 나는 모습으로 걸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함께 버스를 타려는데, 문득 교통카드를 떠올린 내가 룸메에게 물었다.

  “돈은 어떻게 내요?”

  “카드 안 사셨어요? 오이스터 카드?”

나는 내가 참으로 야무져서 이국땅에서도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잘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래, 실수 없이 한 번에 잘 찾아온 건 맞아. 하지만 야무지다고는 못하겠다. 런던은 우리나라 교통카드처럼 ‘오이스터 카드’를 사용하는데, 거의 모든 대중교통 수단에서 이 카드를 쓸 수 있다. 특히 버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현금 결제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이 ‘오이스터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런던에서 오래 머물거나, 나처럼 아예 거주할 생각이라면 지하철역에서 일회용 티켓을 끊지 말고, ‘오이스터 카드’를 발급받아 충전해야 했다. 사실 이건 런던 여행 초보자도 아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회용 티켓 한 장을 끊고서는 뭐 잘했다고 덜레덜레 온 건지. 때문에 나는 룸메에게 캐리어를 맡긴 채, 빗속을 달려 다시 지하철역으로 돌아가 오이스터 카드를 발급받아 와야 했다. 

빗속을 달려오는 내내, 내 귀의 ‘그’ 개구리는 자꾸만 울어댔다. 개굴개굴.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2화'의 한 장면

  

  플랏은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작지만 침대와 책상이 모두 갖춰져 있어 일주일을 지내는 데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룸메는 황송한 저녁 식사 대접도 모자라, 텅 빈 내 침대에 손수 이불을 깔아주었다. 이 플랏이 룸메가 운영하는 숙소라면 이브자리 정도야 당연한 서비스일 테지만, 사실 룸메도 이 플랏에 거주하는 단지 오래된 입주민일 뿐이었다. 워홀러들은 주로 현지에 도착해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편이므로, 이제 막 도착해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나를 위해 이불과 베개를 챙겨주는 그녀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토록 푸근한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런던에 와있기보다는, 서울 망원동쯤에 위치한 친구네 집에 며칠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출처: 'Youtube _마음See 채널_<감히 어딜?!> 2화'의 한 장면

   룸메의 책상 한쪽에는 칼슘, 비타민 등 영국의 각종 영양제가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었다. 

아무렴, 이런 곳에서 혼자 생활할수록 자기 몸 관리는 철저히 해야지. 

2년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이면 한국으로 귀국한다는 그녀가 나는 사뭇 대견스러워졌다. 내가 얼마 동안 런던에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갈 때쯤이면 나는 나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이곳에서의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마치 일종의 방어막처럼 여겨진달까? 외국인이기 때문에 생기는 실수들은, 또다시 외국인이기 때문에 용서받는 듯했다. 교통카드처럼 소소한 일상의 실수들은 물론이고, 딱히 이룬 것 없이 여전히 시작점에 머물러 있는 듯한 내 삶의 현주소도 이곳에서는 외국인이기에 용납되는 것만 같았다. 외국인으로서 받는 생활의 불편함, 차별적 시선, 직업적 제한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반면 여러 가지 삶의 표준들과 나란히 놓이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특권도 부여되는 듯했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만약 명왕성이었다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끝내 태양계 행성에서 탈락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도대체 내가 부족한 게 뭐가 있냐면서 ‘수.금.지.화.목.토.천.해.’ 끝에, 홀로 ‘명!’을 외쳐댔을까? 

아니면, 비교당하면서 만년 꼴찌로 아등바등 붙어있느니, 차라리 다른 취급을 당하더라도 탈퇴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홀가분해했을까? 

‘보이저호’에, ‘명왕성’에, 아주 이틀 내내 비행기를 탔더니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나 보다. 

그럼 뭐하나. 난 지구별에 사는걸. 

에잇! 

아무튼 이게 다 태양 탓.



( Youtube 에서 '예능 다큐  <감히 어딜?!>'을 보실 수 있어요 ☞ https://youtu.be/H54T8hffT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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