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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환 Nov 30. 2021

[버킷리스트] 9. 어린 나이, 꿈을 꾸는 것

<열두 살 샘> - 구스타보 론 영화



감독 | 구스타보 론

출연 | 로비 케이, 벤 채플린, 에밀리아 폭스, 알렉스 에텔

제작 연도 | 2010 년


세상을 알기 전, 죽음부터 알아가야 하는 주인공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샘. 과학과 우주라면 무엇이든 배우고 논하기를 좋아하는 똑똑한 열두 살 어린이. 그리고 백혈병을 두 번씩이나 이겨낸 강한 친구다. 항암제는 투여하지 않고 있어서 다른 백혈병 환자 어린이들과는 달리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샘은 곧 자기가 죽어 없어진다는 사실을 꽤나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죽음을 얘기하고 싶고, 죽음에 더욱 가까이 가면 어떨까 싶은 순진한 호기심까지 몸에 배어있다. 샘은 죽기 전까지 영상 일기를 꾸준히 남기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This is a video-book, and everything I write down here...
I'm going to record on this video, so my memory will live forever.

이건 내 영상 일기고, 여기 일기장에 적어놓은 걸 모두 비디오로 녹음할 거야.
내 기억이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말이야.


펠릭스는 소아암 병동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다. 영화 <열두 살 샘>은 샘이 죽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하나둘씩 실천해 나가는 플롯을 가꾸어 나가는데, 이 이야기 속에서 펠릭스는 아주 든든한 지원자의 역할이다. 샘이 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악동 같은 행동거지들을 뒤탈 없이 모범 삼아 꾸려나가는 녀석이다. 샘과 펠릭스는 병동 안팎으로 언제나 함께한다. 소설 같은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 어린 나이서부터 꿈과 죽음을 동시에 깨달아 가는 이 작품은 어른의 것보다 더욱 궤궤한 경험이 녹아있다.




영화는 죽음과 꿈의 반복이다.

죽음을 묻는 질문들과 써놓은 버킷리스트를 한 차례씩 일구어 나가면서 어느 정도의 콘트라스트가 두드러진다. 호기심이 한창 많을 적, 열두 살의 작은 체구 속에는 암세포에 달라붙는 죽음에 관한 질문들이 가득하다.


‘죽었다는 건 어떻게 알까?’

‘신은 왜 아이들을 아프게 할까?’

‘살아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죽은 줄로 알고 있다면? 산 채로 묻을까?’

‘죽는 건 아플까?’

‘죽은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죽으면 무슨 느낌일까?’

‘사람은 왜 죽어야 할까?’

‘죽으면 어디로 갈까?’

‘나 없이도 세상은 그대로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운 감정이 샘에게 분명히 있었을 테다. 호기심이 풍부한 샘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그대로 호기심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색채로 죽음을 재해석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그 고통을 덜어보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얼굴을 밝게 채우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My grandmother says that dying is like when caterpillars become butterflies.
It’s parts of their life cycle.
It’s scary for caterpillars going into a cocoon, but then they turn into butterflies.

우리 할머니께서는 죽는다는 건 애벌레가 나비로 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삶의 순환인 거다.
애벌레는 고치가 되는 게 무섭겠지만, 결국 나비로 날아오르는 거다.


죽음을 나름 시원스럽게 해석하고자 하여도, 도무지 풀 수 없는 질문도 있다. ‘신은 왜 아이들을 아프게 할까’, ‘ 신은 왜 아이들을 죽게 놔둘까.’ 샘은 이 질문에 대해 해답을 내리는 대신, 그 과정을 엄격히 견뎌야 했다. 샘의 꿈을 함께 좇고 다듬어 주던 친구 펠릭스는 결국 샘 곁을 소리 없이 먼저 떠나게 된다. 자신도 죽어야 할 운명인 것을 알지만, 샘은 남의 운명을 쉽게 쳐다보지 못한다. 그것이 죽음의 단면이고, 슬픈 암흑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묵묵히 인정해야만 했다. 죽음이 다가오는 고통뿐만 아니라, 죽음과 연결된 초조한 질문들과도 사투를 벌이면서 그렇게 샘은 무거운 울음을 견뎌낸다.




끊임없이 자신의 엔딩을 궁금해하는 어린 소년 샘의 투박한 여정은 사실 죽음의 것만이 아니다.

영화는 죽음과 꿈의 조화로운 반복을 보여 준다는 점을 다시 떠올린다면, 샘의 망설임 없는 다짐과 행동은 보드라운 톤 앤 매너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샘의 버킷리스트는 괄목할 만한 이야깃거리다.


‘유명한 과학자가 돼서 연구 논문 쓰기’

‘미성년자 관람불가 공포 영화 보기’

‘에스컬레이터 거꾸로 타기’

‘비행선 타기’

‘십 대가 되어 술 담배하고 여자 친구 사귀기’

‘유령 보기’

‘우주선을 타서 별들 바라보기’

‘세계 신기록 세우기’


펠릭스가 살아있을 적, 그는 샘을 위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울만한 도전과제를 살펴보는데, 단연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좁은 나이트클럽을 만들기’ 다. 기존의 신기록은 2.4 평방미터 크기의 나이트클럽. 펠릭스와 샘은 옷장 안 옷가지들을 죄다 끄집어낸 후 조립한 LED조명 기구를 매달고 빠른 리듬의 댄스 팝을 재생한다. 손님도 받지 못하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둘은 천방지축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세계 신기록 달성. 또한 위지 보드를 사 와서 거짓부렁이로 데려온 유령을 만나 보기도 하고, 엄마 몰래 공포 영화를 보다 들키기도 한다. 샘의 아버지는 코카콜라 회사의 광고 비행선이 띄워질 때 아들을 함께 태워 올린다. 그리고 샘은 펠릭스의 장례식에서 펠릭스의 사촌 케일리와 짧은 키스를 나누며 친구의 조용한 마지막 선물을 그렇게 간직하기로 한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가 부족해 보이는 편견으로 시작한 영화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하고 문득 내뱉어지는 생각을 되짚어 볼 때, 가장 약하고 측은한 것은 백혈병 환자라는 어느 누군가가 아니라 영화를 시작하는 관객으로서의 내 시선이었다. 영화의 원제는 ‘Ways to Live Forever’라고 한다. 꿈을 가지며 영원하고 진실된 시간을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주역이 열두 살 어린이라는 점은,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여로를 점잖이 숙고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두드러진 설정이 되고야 만다. 죽음은 무서울 만큼 빠르게 다가오지만, 샘은 사실상 어떤 무기력함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냈다는 안도감으로 끝을 마주한다. 샘이 세상을 떠나고 난 영화의 마지막은 아무런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눈물, 고통, 곡소리는 모두 빠진 채, 샘이 남겨놓고 간 자리에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날 것이라는 나무의 뜻이 되려 담긴다. 샘에게 첫 키스를 안겨 준 케일리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나 없이도 세상은 그대로일까?.’ 이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될 샘은 금방 답을 찾아낼 것이다. 나 없는 세상은 오히려 더 포근해졌을 거라는.


부재, 죽음이라는 것이 새드 엔딩이 아닌 더욱 찬란한 일상을 만들어 준 꿈의 연유라는 점을 열두 살의 명석한 시선으로 설득해 낸다. 죽음을 소재로 꿈을 표현한 시나리오는 그를 읽는 감상이 슬프지도, 초조하지도 않다. 샘처럼 그저 안도감 하나만이 영화의 엔딩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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