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
내 주변에는 화가 많은 사람이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도 되는 일에 갑자기 화를 내거나 누군가의 작은 실수에 너그러움을 보이지 못한다.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화가 많고, 화를 자주 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화를 자주 내는 이유는 늦게 온 사춘기가 지금까지 이어진 탓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냥 한 소리다. 나는 그저 화를 잘 참아내지 못하는 조금 별로인 사람이다.
변화는 인정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감정의 변화가 심함을 나이를 먹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종종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후회섞인 푸념을 한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고.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만큼 과거의 나에겐 이상한 면이 있다.감정적으로 미숙한 점이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고 성질을 냈다. 그런 나를 좋아하고 이해해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다툰 뒤에도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뚱해 있던 나를 어르고 달랜 친구들 덕분에,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싸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됐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어서 나는 아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화내는 순간이 많이 줄었다. 여기서 ‘줄었다’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여전히 화를 내지만, 내가 화를 가장 많이 내는 대상은 내가 되었다. 기대한 만큼 일을 해내지 못하거나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면 자신을 혼낸다.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답답한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화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자칭 ‘에린남 연구원’인 남편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이상한 아내를 지켜보다가 무언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간만의 성과에 잔뜩 신난 모습으로 자신이 알아낸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말해주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나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허술하고 게으른 자아.둘 중 하나만 있어도 평화로울까 말까한데 상반된 두 자아가 매일같이 충돌하니 자꾸만 화가 나서 자신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꽤 정확한 연구 결과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에게 난 화를 애먼 곳에 푸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애써 스스로 위로했다. 적어도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피해를 보는 내가 있다. 나는 나에게 화를 내고 나에게 상처를 받는다. 누가 이겨도 좋지 않은, 불필요한 전쟁이 매일 내 안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전쟁을 끝내야 하는 것도 바로 나다. 오늘부로 나는 종전을 선언하겠다.
완벽주의 자아와 게으른 자아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사이좋게 지내기로 협정한다. 과연 나에게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