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거나 등단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런 단순한 설렘만으로 겁도 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A4용지 기준으로 9쪽 분량의 소설을 쓰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소설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제대로쓰고 있는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창작과 퇴고를 반복했다. 이상하리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퇴고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쓴 글이 걱정되거나 불만족스럽지 않았다. ‘씀’이라는 온전한 창작 행위에서 성취감을 얻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어찌나 즐거웠는지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자신감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채웠다. 소설 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착각하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그때의 나에게는 쓸 수 있는 용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써나갈 수 있었다. 초보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였다. 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소설을 써본 적도 없었기에 내가 쓴 소설이 잘 쓴 것인지, 엉망진창인지도 판단할수 없었다. 당장 누군가가 평가할 소설이 아니었고, 돈을 받고 쓴 소설도 아니었으며, 공모전에 낼 소설도 아니었다. 볼 사람이라고는 나뿐이었으니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어나간 뒤 끝내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용감하게 즐기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내가 쓴 소설이 마음에 들어 브런치에도 올렸다. 평가받을 생각이었다면 절대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욕심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이만큼 쓰고 끝냈다는 사실이 기특했기에 올릴 수 있었다.
그 뒤로도 하루에 한 편씩 일정 분량을 채우며 글을 썼다. 씀의 즐거움이 계속될 줄 알았건만 안타깝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내 눈도 나날이 높아졌다. 글에 관한 관심이 늘고, 쓰는 것만큼 읽는 것도 좋아져서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접했을 뿐인데, 시야가 넓어지니 다른 사람들이 쓴 글과 내 글이 비교되기 시작했다. 내 글의 부족함이 보였다. 너무 빨리 주제를 파악했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잘 쓴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잘 정돈된 구성의 글에서는 글의 품격까지도 느껴졌다. 알게 되니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은 덤으로 생겼다. 내안의 자신감이 비눗방울처럼 ‘퐁퐁’ 한없이 가볍게 터졌다. 가득 차 있던 용기도 한 움큼씩 사라졌다. 이대로 글 쓰는 재미를 잃게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어떻게 얻은 재미와 즐거움인데. 사라지면 안 돼, 내 소중한 용기!
두려움이 생길 때 마음을 붙잡지 않으면 쓰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버린 꿈처럼 내려두고 다시 도망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가까이에 다가선 부담감에서 멀어지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땐 초보의 용기를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쓰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던 때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썼다. 엉망이라고 느껴질 때도 그냥 썼다. 그냥 쓰면 결국에는 글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지금껏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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