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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Sep 09. 2024

무대가 두려운 사람의 첫 강연

첫 강연 후기 - 당진시립중앙도서관

첫 강연을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책을 출간하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요청을 받았다. 몇 개의 서면 인터뷰를 했고, 제로 웨이스트 관련 인터뷰 서적에도 인터뷰이로 참여했고, 미니멀리즘 서적에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종종 강연 요청이 오기도 했었는데 모두 죄송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거절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앉은자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한껏 신이 난 채로 떠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약간의 무대공포증 같은 게 있어서 혼자 우뚝 서서 관심을 받아야 하는 자리는 피해왔다. 타고난 성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 앞에 서면 뚝딱거렸고, 사람들 앞에서 혼자 발표하는 순간이라도 오면 압박감을 못 이겨 며칠 동안 힘들어했다. 그런 이유로 발표나 강연은 하지 않는 편이 나에게 이롭다는 정설이 내 안에 새겨졌다.


아무튼 한 살씩 더 먹어가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무대공포증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혼자+앞에 나와서+말하는 것은 여전히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 강연을 하게 됐냐고? 처음에는 나도 제안을 거절했다.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제안을 주신 사서님의 진정성에 넘어갔다(!?). 사서님은 메일로 내 이야기가 이 강연 자리에 딱 맞은 주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솔직히 '지극히 개인적인 내 이야기'가 '강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연을 거절해 오기도 했다. 물론! 물론! 나의 이야기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분들의 댓글들은 많이 읽었지만, 강연이라는 형식 자체는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로도 충분하다고 하시니까 막 자신감이 생겼는지. '그럼 한 번 해볼까?', '미친 척하고 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는 용감해졌고, 글쎄 강연 요청에 승낙을 해버렸다.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있다. 2024년이 되면서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직면해 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을 실내 클라이밍을 하러 길에 했다는 게 조금은 웃긴 부분. 그렇지만 클라이밍을 하러 가겠다고 누군가를 따라나선 일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나는 공포증 컬렉터다)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 다짐은 굳게 닫혀있던 내 안의 거대한 문을 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문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살짝 했다. 실제로 나는 그 다짐을 한 뒤로 많은 일을 했다. 내가 무서워하던 것들을 마주하고 하나둘씩 헤쳐나갔다. 그 덕분에 나는 또 다른 두려움도 맞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려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기!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지만 그깟 거 이번 기회에 한번 이겨내 보기로 했다.


'그래 강연해 보자!'

'그냥 내 이야기를 1시간 30분 동안 혼자서 떠들 수 있다! 와! 신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약속된 강연 날짜가 됐다. 나는 나를 불러주신 그곳, 당진시립중앙도서관 4층으로 갔다. 메일과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사서님과 만나서 두런두런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었다. 강연이 시작하기도 전인데 청중들이 하나둘 자리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내가 만든 얼렁뚱땅 PPT가 큰 스크린을 채웠다. 곧 나의 첫 강연이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떨리지도 않았다. 도서관 4층으로 올라오기까지 정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긴장감과 두려움에 괴상한 소리를 내기도 했고, 평소 바짝 말라있던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렇게까지 긴장했던 적이 있었나? 아무튼 나는 창백한 얼굴로 바들바들 떨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래도 사서님께서 오늘이 내 첫 강연이고, 작가님이 많이 긴장하고 있다고 좋게 봐주시라고 청중들께 강연이 시작하기 직전에 말씀해 주셔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 덕분에 강연 공간을 채운 분들은 인자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셨고, 나는 입을 뗄 수 있었다. 마이크를 쥔 손은 내내 떨렸고, 모두가 나를 보고 있는 순간이 아주 가끔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정한 얼굴들과 내 말에 반응하는 작은 끄덕임에 긴장은 차차 풀려갔다. 강연 중간에 자연스러운 질문도 건넬 수 있었고, 웃음기도 되찾아갔다.


나름 열심히 만든 PPT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리모컨 조작이 낯설어서 화면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가기도 했고 어느 때는 화면이 멈춰있다가 갑자기 휙휙 넘어가기도 했다. 정말 엉망이었지만,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제시간에 끝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강연은 내 첫 책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부터 네 번째 책 <취향 탐구 생활>까지 이어지는 내용을 간추린 내용이었다. 나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나아졌고, 또 달라졌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강연 후에는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다. 질문을 받은 뒤에 나는 차분하게 답변을 하고 싶었지만 스크립트에도 없는 말을 하려니 아무 말이 막 튀어나왔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말투로 허둥지둥하고 싶은 말을 정리되지 않은 채 말을 뱉는다. 아아 창피하다. 하지만 이 또한 견뎌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첫 강연은 걱정한 것보다 엉망은 아니지만 뭐랄까 처음인 게 여기저기서 드러난 부족함 가득한 강연이었다. 


중간중간 땀을 삐질삐질 흘려서 그런지 모든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당진까지 함께 와준 남편과 예정 없는 다음 강연을 위해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할 때 청중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 마이크는 어떻게 들면 좋은지 강연자였던 내 모습을 되새겼다. 강연이 다음으로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아쉬운 부분들을 마음에 담았다. 


강연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경험이었다. 평소처럼 거절했다면 알 수 없었을 강연의 작은 재미와 큰 성취감을 느꼈고, 내 두려움의 몸집이 아주 조금 작아질 수 있었다. 나의 첫 강연은 내게 아주 큰 의미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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