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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l 19. 2023

내 핸드폰 배터리는 어디로 갔을까

주제: 핸드폰 


[100% - 스마트워치]


손목시계의 스마트워치의 알람이 울린다. 나의 수면시간은 7시간 안팎. 면역 저하로 인한 두드러기가 생긴 이후로 수면시간을 7시간이 넘을 수 있도록 맞추기 위해 세팅해 놓았던 기능이다. 자는 동안 배터리도 풀 충전되어 있다. 100%이다.  7시가 넘은 걸 확인하고 나서는, 아이들을 깨운다. 

 아침밥을 먹이고, 학교를 등교시키고, 어린이 집을 등원시키고 그러고 나서 한숨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갈 때쯤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제야 핸드폰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87% - 카카오톡 ]

카톡을 열었다.

 '여름 특가 세일'

 '땀이 많은 아이 00가 없어서였다'

 '아빠생일 전화하기'

 '이번주 8시에 무료특강 있어요! 신청순 접수받아요.'

 '어머님, 8월 특강 신청 접수를 다음 주부터 받고 있어요.'

 '보육결제알리미입니다.'

 '00 세무입니다. 부가세 신고 기간입니다.'

 '누나, 이거 cctv좀 확인해 볼래? 창고에.. '

 '뭐 해? 우리 아기들이 너무 보고 싶다, 집에 김치는 얼마나 먹어가?'

 '0기 클럽 모임이 0일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투표해 주세요.'

 '죄송한데요, 제가 이번주 모임은 못 나갈 것 같아서요,, '

 '방학 중 센터 등원 수요조사 부탁드립니다.'

 '어린이집 만족도 조사 아직 응답하지 않으셨다면 오늘까지 응답부탁드립니다.'

 '사진을 보냈습니다.'

 '지금 핫한 신규강의 이벤트 보고 가세요.'

 '블로그 썼어??'

 '안녕하세요, 00 물산 글 보고 연락드렸는데,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나요?'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www.longblack.co/note....'

'수료증 신청하시는 분들 폼에 양식 입력해 주세요'

'현금영수증 발급가능할까요? 온라인 결제는 안 되나요?'


나는 카카오톡만 확인했을 뿐이데, 그렇게 카톡 안에 담겨 있는 요구와 요청과 응답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톡을 확인하면서 밀린 결제나 이체들을 하다 보니 배터리는 어느새 줄어들었다. 


[64% - 유튜브]

핸드폰만 보아서인지 눈이 시리다. 간지럽기도 하고. 요즘따라 많이 나오는 증상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먼 곳을 보아야 눈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앞에는 아파트와 상가들로 더 먼 곳이 보이지 않는다. 날이 좋다. 시간을 보니 오늘 등원에 이슈가 없어서인지, 30분 정도 여유를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방향을 틀어 산책로를 향한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개울에 물이 많아져서, 청명하게 흐른다. 산책을 하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껴본다. 신문을 보는 것 처처럼 유튜브의 스트리밍 목록을  스크롤한다. 30분 정도의 시간에 들을 만한 건 뭐가 있을까. 이렇게 산책했을 때 가장 편한 것은 바로 시사 뉴스 요약을 하고 브리핑하는 채널이다. 들으면 상식이 되겠고, 안 들어도 그만인 그런 것들이 시사 아닐까. 발을 움직여보고, 눈을 최대한 멀리 두면서 걸어본다. 귀로는 새벽에 서울에서는 안전 알림 경보가 새벽에 나와서 다들 전쟁이니 뭐니 대피를 해야 되나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9시에 듣고 있다. 나는 세상모르게 꿀잠 자고, 등원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새삼 약간 무서움에 움찔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평화로웠던 것들이었다.  새마을금고의 뱅크런 얘기를 들어보며, 미처 몰랐던 뉴스를 알게 된다. 내가 새마을금고에 통장이 있었나? 모르고 있었으면 나만 돈 안 뺀 사람이 되었던 건가? 그런 저런 시사와 상상의 나래 그 사이 즈음에서 산책을 돌다 보면 30분이 벌써 다 지나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45% - 크로버노트]

 나는 온라인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온라인 상담이었다. 화상으로 약 1시간 정도 현재의 커리어 고민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듣고, 방법론 적으로 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팀장이 되신 분의 상담이었다. 자기가 생각했던 팀장과, 내가 팀장이 되고 나는 나의 모습의 괴리감을 없애고, 팀장의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화상으로 진행되기에, 이후 기록과 추가적인 코칭을 위해 화면을 녹화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요즘 많이 쓰고 있는 것은 '크로버노트'라는 음성기록 앱이다. 이야기와 대화를 녹음하면 그 녹음된 내용을 스크립트로 변환시켜 주는 것이다. 상담의 시간이 제한적이고,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상담에 집중에 필기가 방해되기도 한다. 그럴 때 크로버노트 앱을 사용한다. 상담을 한 분도 내용을 다시 듣거나 정리해서 받아보고 싶어 하시기에 녹음을 해서 기본적인 스크립트가 저장을 한 후 상담이 끝난 뒤 이 내용을 복기해서 저장한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꼭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상담을 마치고 보니 45%로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 있다. 나가려면 15분 정도가 남았다. 보조배터리가 가방에 있지만, 혹시나 해서 배터리를 충전한다. 충전하는 동안 상담노트를 정리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블로그를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60% - 카메라]

이제 하교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있다. 30분 정도 오늘의 운동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지하로 내려간다. 아파트의 골프연습장은 하루에 1시간으로, 한 달에 2만 원이다. 1년 내내 7번 아이언만 치고 있지만, 필드 한 번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려간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남짓이지만, 기본자세로 7번 아이언을 7-80번씩 치고 나면 수련을 끝낸 기분이다. 골프를 할 때에는 카톡 알림도, 전화도, 얘기도 없다. 마치 목욕탕에서 물속에 들어간 우웅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그 정적과 몰입이 주는 잠깐 타임슬립 같은 그 모먼트를 좋아한다. 그래서 골프실력과 상관없이 LoL을 반복하는 수련의 과정이 좋다. 하지만 혼자 하다 보니 자세를 잡거나 하기가 쉽지 않다. 핸드폰을 켜서 동영상으로 자세를 기록한다. 남편에게 보내주거나 저녁에 영상을 보면서 내 자세를 바로 잡아준다.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부부의 골프레슨 방법이다. 그렇게 동영상을 기록하다가, 기록을 시작한 것을 까먹고 계속 기록이 된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아차하고 핸드폰을 보면 배터리는 그새 40%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40% -내비게이션]

아이를 하교하고 학원으로 라이드를 간다. 버스가 오지 않는 학원이라 직접 라이드를 해서 보낸다. 차에 내비게이션 보드가 고장난지 오래다. 이걸 고치려면 서울까지 수리 센터로 가야 되고 그러려면 남편 연차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보는 남편은 불편하지 않은지 아직 그대로 두고 있다. 가까운 거리지만 그래도 내비게이션을 켠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많아서,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으면 보호구역의 제한 속도를 못 지킬 때가 있다. 예전에 계도기간에 걸려 다행이었지만, 속도위반 경고로 딱지를 받은 이후로 생긴 습관이다. 짧은 거리라도 내비게이션을 켜면 배터리가 훅 떨어진다. 


[20% - 인스타] 

역시 여름엔 놀이터다. 학교와 학원의 모든 스케줄이 끝나도 해가 나있는 놀기 좋은 여름이 아닌가. 이제 제법 놀이터를 좋아하는 둘지도 한몫한다. 코로나베이비로 제대로 바깥놀이를 못해본 게 짠해서인지, 요즘은 더 많이 밖에서 놀게 한다. 이제 나는 놀이터에서 그늘을 찾아 장승처럼 서있거나 운이 좋으면 의자에 앉아있다. 서로 아는 엄마들끼리 얘기도 할 수 있지만, 딱히 아는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런 시간에는 유일하게 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기에 아이들이 보이는 구석자리를 찾는다. 아이들은 놀고 있으니 1-2시간이 훌쩍 가겠지. 벌써 미끄럼틀을 무서워하지 않는 둘지가 귀여워서 카메라를 들어서 찍어본다. 그리고 첫째가 둘지를 데리고 그네를 밀어주고 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 동영상을 찍어본다. 아침 카톡에서 시어머니와 엄마가 애들이 보고 싶다고 했던 얘기가 생각나서 사진과 동영상을 오늘 버전으로 보내본다. 그러다가 친구가 보낸 카톡으로 인스타 유머 짤을 열어보다가 인스타 서핑에 빠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들 멋진 곳들, 신박한 아이템들을 구경하다 보면 나만의 디지털 놀이터가 된다.  늘 똑같기만 한 일상에서 유일하게 인스타에서는 내가 못해본 힙한 성수동이라는 곳도 보여주고, 또 요즘은 말차가 유행한다는 디저트 신상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놀다 보면, 나도 올려보고 싶어 진다. 나는 제일 심심할 때 하는 게 인스타다. 인스타가 활발하다는 거는 심심하거나 물리적인 제약(?)으로 갇혀있다는 뜻이다.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기록을 남긴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을 다시 생각해 보면 서말이다. 그럴 때 해시태그 드립도 잘 나온다. 요즘 인스타감성은 사진을 예쁘게 보여주고 삐약이나 하트 같은 이모티콘 몇 개 올리고, 입 닥치고 있는 게 트렌드라고 한다. 하지만 글을 못쓰게 하고, 말을 못 하게 하다니, 재갈을 물고 인스타를 하는 것 같다. 그럴 땐 폭주한다. 비록 놀이터에서 이렇게 가만히 서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묵언수행 중이지만, 온라인에서는 키보드 워리어에 수다쟁이다. 


[3% - 보조배터리]

그렇게 신나게 업로드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핸드폰이 어두워진다. 아차, 보조배터리를 끼우는 타이밍을 놓쳤다. 보조배터리를 찾으려 가방을 뒤지는 순간 핸드폰은 통신사 로고를 띄운 채 검은 화면만 보여주고 있다. 이럴 수가. 보조배터리를 끼우고 다시 배터리가 올라가는 데에도 시간은 조금 걸릴 것이다. 시계를 보니 아직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기에는 1시간이 남았다. 충전되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둔다. 그리고 주변을 본다. 아이들이 서로 잡기놀이를 시작했다. 멍하게 아이들이 잡기놀이를 하는 걸 보고 있었다. 술래를 반복하기에는 둘지가 아직 어리다. 첫째가 술래의 역할에 대해 둘째에게 설명하고 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면 또 술래가 2명이 되는 상황이 돼버린다. 뭐든 형이 하는 걸 똑같이 하는 5살 동생의 한계다. 핸드폰 잡던 손을 놓고 나니 손이 비어있다. 아직 시간은 남았고, 스마트워치를 보니 오늘의 목표인 만보 걷기에서 3천이 모자란 상태이다. 핸드폰이 충전되는 동안 3 천보를 채워야겠다. 핸드폰을 놓은 손으로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첫째에게로 간다. 엄마가 술래다. 이제 너희 다 잡으러 갈 거야. 의지를 다진다. 

"엄마, 우리 잡히면 어떻게 돼?"

"둘 다 잡히는 순간, 이제 집에 가는 거다! 이리 와 이 녀석들아!!!"

"꺄아"


집에 가고 싶은 엄마와 , 집에 가기 싫은 아이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잃고 싶지 않은 게 확실할수록 게임이 즐겁지. 이 순간은 배터리가 얼마나 충전되고 있는지는 이제 알고 싶어지지 않아 졌다. 역시 놀이터에서는 놀아야 시간이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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