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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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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Mar 11. 2023

마법에 걸린 엄마

쓰는엄마 : 일주일 

 

 #1. 버스 정류장      

여느때와 다름 없는 봄날이다.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밝은 노란색 버스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온다. 형인 제이와 동생인 잭은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 버스에서 노란 병아리들 처럼 통통 하고 내려온다.      

 "지혜로운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달의 인성교육의 주제는 '지혜'이다. 지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집으로 간다는 것이 신이난 제이와 잭 형재들은 신나게 엄마 품으로 먼저 안기려고 달려온다.      

"어서와, 오늘은 재미있게 놀았어?"

"응! 오늘은 블럭놀이를 했어!"

"아냐! 나는 연아랑 노는게 좋아!"     

형이어도 엄마 앞에서는 조잘조잘 할 말이 많은 아이같은 제이가 엄마에게 오늘 블럭 놀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에 질새라 아직 제이 형 만큼 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잭도 친구들 이름, 선생님 이름, 유치원에서 불렀던 노래메들리로 엄마의 관심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했을까, 잭이 자기말을 안듣는다고 엄마를 붙들려고 팔을 돌리면서 엄마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엄마 얼굴이 평소와 달랐다. 울그락 붉그락 한 것 같기도하고 하얗게 보이기도 했다. 약간 찡그린 얼굴로 형의 이야기를 듣고 끄덕이고만 있었다. 형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없는 이야기인걸까? 조금 의아했지만, 제이 형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니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놀이터     

"엄마, 우리 놀이터에서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되요?"     

유치원 가방 두 개와 오늘 활동북으로 나온 책 더미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에는 잭의 손을 잡고 힘겹게 걸어가는 엄마가 조금 신경 쓰였다. 그래도 지금 저 놀이터에 미끄럼틀을 재미있게 타면서 꺄르르 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가 더 기울여졌다.      

"제이, 잭. 오늘은 그만 들어가면 안될까? 엄마가 앉아있을 때도 없고 오늘은 좀 힘들어서.."

"엄마 조금만 놀다가요, 10분만! 엄마가 알람 해주면 되잖아요!"

"맞아요, 엄마, 형 말처럼 알람해요 10분 !"

"... 그래 알았어 10분만 놀다가 가는거야."     

그렇게 우리는 놀이터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놀이터는 만원인 상태여서 엄마가 앉아서 쉴 곳은 없었다. 우리가 노는 놀이터의 공간은 햇빛이 들지 않고 시원한 그늘이 있었지만, 엄마가 서있는 곳은 햇빛이 그대로 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벤치에도 이미 먼저온 사람들이 앉아 있어서, 엄마가 앉을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엄마는 계속 서있었다.      

"10분이야, 제이, 잭! 이제 알람울렸어!"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제이는 조금만 더 놀고 싶었다. 엄마에게 잡히지만 않으면 1번이라도 더 미끄럼틀을 탈 수 있다는 걸 아는 제이는 엄마의 눈을 피해 미끄럼틀로 향했다. 잡히지 않는 제이와 그걸 보고 더 좋다고 따라하는 잭. 엄마는 점점 화가 난 것같지만, 이내 다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다가 하얗게 되기를 신호등 처럼 반복했다. 그러다가 조용해졌다. 엄마가 팔짱을 끼고 손으로 휘이휘이 손짓을 했다. 더 놀으라는 신호였다. 제이와 잭은 신이 났다.      

"이제 진짜 가야돼. 해도 지고 모두 저녁을 먹으러갔어 얘들아."     

#3. 식탁      

"오늘은 고기구워주세요!"

"그래 알았어, 식탁에 가만히 앉아있어. 식탁에서 장난치면 위험해"     

맛있는 고기와 밥, 그리고 동치미와 계란이 올려져있다. 와구와구 먹고 싶긴 하지만, 제이와 잭은 눈을 마주치자 서로 식탐보다 장난끼가 발동했다. 서로의 고기를 뺏어오는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장난은 곧 누군가의 빈정을 상하게 하고 그러다가 결국 힘에 밀린 잭이 엉엉 운다. 제이는 또 머슥한 마음에 식탁 밑으로 들어간다.  오히려 이것이 엄마의 화를 돋군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냥 지금 제이는 이 머슥한 기분을 숨기고만 싶다. 조금 쪽팔린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식탁 위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감는다. 호흡을 해보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지금 뭐하는거야, 누가 식탁에서 장난치래, 그리고 제이 올라와. 자리에 제대로 앉아"

"키키키키 엄마 나 찾아봐라"     

 머쓱해진 제이가 꺼낸 카드는 최악의 카드였다. 결국 그 카드는 엄마가 불이 되어서 포켓몬의 파이리 처럼 불을 뿜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 목소리가 저렇게 컸었나. 사실 평소에는 이정도는 그냥 넘어가 준 것 같은데, 이상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식탁에서 제이가 기억나온다. 그렇게 엄마는 불을 뿜다가, 배를 움켜쥐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린다.      

#4. 대책 회의      

"형아, 엄마가 왜그러는 거야?우리가 잘못했다고 하자"

"그래, 내 생각에는 아마 엄마가 마법에 걸린거 같아."     

"마법? 그래 맞어 우리엄마는 불을 뿜는 엄마가 아냐. 나에게 뽀뽀해주는게 우리엄마야."

"맞어. 엄마가 예전에 이야기해준 아기의 전설이 있었어. 아마 엄마는 지금 마법에 걸린 기간일꺼야.     

그 전설의 마법책이 여기 있었는데, 잠시만 형아가 읽어줄께."     

#5. 마법에 걸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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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주머니가 있습니다. 그 마법의 주머니는 그 안에 작은 씨앗을 넣으면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팔, 다리, 코, 머리카락, 심장 등등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주는 마법의 주머니랍니다. 그 주머니는 10달 동안 여자의 배 안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점점 부풀어 오는 마법의 주머니는 마법이 풀리는 주문이 외워지면 펑 하고 주머니에서 아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 마법의 주문은 '사랑하는 우리 아이, 엄마가 아빠가 너를 기다린단다."입니다. 그 이야기의 간절한 기도가 통하면 마법주머니는 사랑하는 아이를 뿅 하고 나타나게 하고 다시 뱃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신 이 기도를 들어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한 달에 한번 이 마법의 주머니의 마법이 효과를 가지기 위해 일주일 동안은 조금 불편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고, 잠이 잘 안오기도하고, 걱정이 많아지기도 하고, 화가 많아지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마법 주머니 덕분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이 마법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마법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엄마가 매 달 한번 마법에 걸리는 일주일 동안은 마법사 엄마를 배려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법주머니의 마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마법의 기간에는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물을 주거나,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자고 있을 때에는 엄마 배위에 올라타거나 헤드락을 걸거나 엄마 엉덩이에 얼굴을 박거나 하는 장난은 주의해주세요. 엄마가 화장실에 있을 때는 갑자기 문을 벌컥 열거나, 문을 닫지 말라고 재촉하거나 생떼를 쓰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마법에 걸린 엄마가 마법을 유지하는데에 힘을 다 쓰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봐왔던 엄마가 아닌 마녀 엄마를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법의 일주일이 지나면 마법처럼 내가 알던 원래의 엄마로 돌아오니, 걱정마세요. 마법의 일주일만 엄마가 마녀로 변할 수 있는 마법사라는 것만 기억하세요! 

[경고] 마법에 걸린 엄마에게 "엄마, 마법에 걸렸구나!"라고 말하면 그 마법은 엄마를 마녀로 바꾸게 되는 주문이 됩니다. 절대 사용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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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법에서 풀린 엄마           

 "잭, 봤지? 엄마는 지금 마법에 걸린 기간이야. 그러니까 우리 여기에 적힌대로 해보자."     

 "응. 좋아!! 그럼 우리 엄마한테 따뜻한 물을 가져다 주면서 미안하다고 하자!"     

그렇게 제이와 잭은 따뜻한 물을 가지고 문이 닫긴 안방앞에서 똑똑 하고 노크를 합니다.           

"왜? 엄마 좀 누워있을래. 너희 밥 다먹으면 얘기해."     

"아니에요. 엄마 식탁에서 장난 안치고 밥 먹을게요. 그리고 여기 따뜻한 물 가지고 왔어요. 이거 마시고 마법을 풀어요, 아차, 아니다. 이거 마시고 화 푸세요"     

 닫혔던 안방 문이 열린다. 아까 하얗게 보였던 엄마 얼굴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옅은 미소를 띄면서 엄마가 고맙다며 따뜻한 물을 마신다.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보러갈까라고 얘기하며 제이와 잭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간다. 제이와 잭은 엄마의 손을 각각 잡고 식탁으로 가서, 서로 마주보며 남은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찡긋한다. 둘만의 신호로 엄마가 마법에서 풀리는 일주일이 끝나는 날까지의 작전을 나눠본다. '아차, 식탁에서는 그만 신호를 나눠야지'라고 제이는 생각하며, 잭에게 밥 다 먹고 방에서 작전을 짜자고 얘기한다. 제이와 잭은 와구와구 남은 밥을 맛있게 먹는다. 제이는 곁눈질로 엄마를 슬쩍 봤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배시시 웃으며 식탁에 앉아있다. 마녀 엄마가 이제 사라진 것 같다고 제이는 안심하고 평소에 잘 안먹던 김치까지 맛있게 깨끗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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