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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Mar 01. 2023

마흔의 선택

쓰는 엄마 글감 : 마흔

"우리가 벌써 마흔이라니!!"

"아냐, 아직 서른여덣이야. 만 나이로 봐야지."

"아우 정말 32살에 애 낳고 나서는, 누가 어디서 나이 물을 일도 없고 내 나이도 까먹는다니까."

"맞아, 나도 병원 가서 나이 적으라고 하면 헷갈려, 크큭 벌써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

"그러게 말이야. 서로 생일이나 까먹지 말자고!"


생일 안부를 전하며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했다. 스무 살 대학교 때부터 친구여서인지 통화를 하다 보면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나며 현실의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약간의 씁쓸함과 조금은 잘 해내왔다는 위로 사이의 어디 즈음의 묘한 감정으로 통화를 마친다. 

 유독 나이앓이가 심한 편에 속한다. 스무 살이 되면 꿈꾸는 것들이 많았다. 스무 살이 되면 자연스레 서울의 2호선 라인의 어느 대학가에서 과잠바를 입고 예쁜 스커트와 무거운 전공책의 언밸런스한 패션으로 돌아다니겠지.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남아서 공부를 하다가도, 그런 상상을 많이 했다. 모의고사 오답노트를 적다가도 그게 적기 싫으면 이 노트가 나중에 수능 비법 노트가 될 거야 라는 상상을 하며 형광펜도 색칠해 보고 글씨도 다시 적곤 했다. 그러다가도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와 대학교 위치가 있는 곳을 보면서 어느 학교로 갈까, 고려대를 가서 성시경 오빠를 선배로 둘까 아니면 조금 더 기갈나 보이는 연세대를 갈까. 아니면 줏대 있게 이화여대로 가서 정말 긴 생머리를 날리며 당찬 여성 리더상이 될까. 이런 상상들을 했다. 아마 그런 상상들을 좀 덜 했어야 나의 노트는 수능비법노트가 되었겠지. 역시나 그런 상상을 한 덕에 수시 전형을 앞두고 약간 들뜬 마음에 헛물부터 켜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시 전형인 수능에서 기준 점수를 채우지 못했고, 결국 모자란 정시 점수로 근처의 대학 중에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어쩌겠는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해서 선택의 폭이 적어진 것을 그때 깨달았는 걸로 퉁쳐야겠지. 그렇게 시작한 스무 살은 내가 만든 선택을 최대한 내가 만족스러운 선택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20대는 선택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선택할 것이 많았고, 그래서 힘들었고,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시간들이랄까. 

 그렇게 쌓아진 20대를 돌아보다 문득 30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20대는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하면, 30대는 선택에 대한 책임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배우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둘 낳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서 펼쳐지는 길들을 걸어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이 둘을 낳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아들 둘이 될 거라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후회가 없을까에 대한 선택을 서른에 하고,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 했다.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성장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바로 사이렌 경보가 울리고, 화장실도 문 열고 볼일을 봐야 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책임의 어느 기로에서 조금 지나오니, 이젠 나는 학부형이 되고 마흔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마흔은 오지 않았다. 20대는 선택의 연속, 30대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면 나에게 마흔은 어떤 40대일까. 정작 스무 살과 서른 살에는 기대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꿈꾸던 것이 있었다. 하지만 마흔 살에 대한 것은 희뿌옇다. 30대에 깨달은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었어서 그런가. 할 수 있는 것만 떠올라서, 무언가 꿈꾸거나 기대하는 부분은 현실에 배제되니 떠오르지 않고 뿌옇게 보인다. 그래서 조금 더 두려운 마음이라기보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 있을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지만,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기대될 수 도 있으니까. 마흔에 떠오르는 정확한 것은 없지만, 40대가 되면 선택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시간으로 빚고 싶다. 내가 한 선택들이 나에게 가치가 있도록,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을 우선순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을 하자 희뿌옇던 마흔에 대한 그림이 조금은 안정감이 들었다. 마치 동트기 전의 새벽 같은 고요함이랄까. 조금은 조용한 기대감을 마흔을 앞두고 가져본다. 나는 마흔에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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