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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Mar 15. 2023

식탐 없는 아이

쓰는 엄마  

 어릴 적부터 유난히 재미가 없던 것이 있다. 바로 먹는 것. 소위 말해서 입이 짧다는 것. 먹는 재미는 타고난 기질 일 수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자라는 장기를 가지고 있어서 일 수 도 있고,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장애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불편한 정도랄까.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는 나이에 맞게 장기도 성장하기에 먹고 나서의 문제는 없어졌다. 그리고 오히려 입이 짧고 식탐이 없는 것은 다이어트를 달고 살아야 하는 젊은 청춘의 20대까지 살아갈 때에 오히려 금수저와 같이 타고난 복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먹는 행위는 아주 지루한 활동이었다. 엄마도 나를 분유 먹일 때에 그렇게 힘들었다고 한다. 모유는 잘 안 나오는데, 작게 태어났으니 분유를 먹으면 더 잘 자랄까 싶어서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늘 분유병에 마지막 20ml 정도로 바닥을 남겼다고 했다. 그 남긴 20ml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분유통의 바닥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 어떤 날에는 엄마의 소원을 이룰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좋아함도 잠시, 조금이라도 더 먹었다 싶으면 바로 실컷 먹였던 150ml를 게워내곤 해서 엄마 속을 썩였다고 했다. 그런 애가 자랐으니 오죽할까. 자라면서 먹는 음식은 다양해졌지만 먹는 행위가 즐겁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먹을 때에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하고, 반찬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심지어 멸치육수 베이스의 국물은 잠이 덜 깬 아침에 빈 속에 그 냄새를 잘 못 맡으면 속의  울렁거림이 있었다. 그리고 반찬을 집어서 입에서 우물우물 잘게 씹어서 넘기고, 그 넘기는 꿀꺽하는 목 넘기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뭐랄까 억지로 삶을 연명하기 위해 여물을 씹는 느낌이랄까. 겨울철 말라비틀어진 짚단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먹는 코걸이를 한 소가 된 기분이었다. 어차피 도살되기 위한 살을 찌우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데 또 안 먹으면 힘이 없으니 눈을 떠서 텔레비전을 보든 산책을 하든 하려면 매일 3번이나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물어보면 나는 늘 누룽지였으니까. 밋밋하지만 구수한 그렇지만 너무 과하지 않고 자극스럽지 않는 음식이었다. 남들은 누룽지를 음식 취급도 하지 않으며, 그런 거 말고 어떤 음식을 좋아햐나 고라고 다시 되물어보면 그냥 싱긋 웃기만 했다. 뭐라고 말할까. 더는 없는걸.

 

 어느 날 책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2시간 동안 식사를 한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요리가 하나씩 나오고 그동안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내가 태어나야 할 곳은 프랑스라고 생각했다. 2시간 동안 천천히 음식을 곱씹으며 하나의 종류씩 맛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면 먹는 게 즐거울 것 같고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난 마음으로 엄마에게 달려가서 나는 프랑스 사람이라고, 프랑스 사람처럼 밥을 먹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사람처럼 먹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커서 프랑스 가서 네가 먹으면 상관없지만, 지금은 학교 가야 되니 일단 아침밥부터 먹고 가라고 했다. 그때의 실망감은 밥상머리에서의 반항심으로 옮겨갔다. 왜 먹어야 하는지, 이 음식은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줘야 하는지 스스로가 찾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그걸 찾는 걸 포기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밥을 물에 말아먹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금 빨리 먹을 수 있었고, 급식시간에 다른 사람의 밥 먹는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식탐은 생길 기미를 보이지 않고, 20대의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타고난 금수저 체질로 살게 해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물론, 인생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순간인지그 혜택을 너무 누린 탓에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벌로 지금은 왕성한 식탐을 갖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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