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무슨 방이야? 나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워!”
늘 관심을 독식하던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물건도, 관심도 나누게 되면서 꽤나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가끔 부모님이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날이 되면 남편과 나와 첫째와 함께 외동놀이를 잠깐 한다. 외동 놀이를 할 때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요즘은 첫째 아이가 탐정놀이에 꽂혀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방탈출 카페. 말 그대로 방에 있는 힌트를 토대로 자물쇠를 열어서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방을 탈출하는 것이 목표인 곳이다.
“엄마, 이거 숫자로 된 자물쇠야! 숫자를 찾아봐!”
“여기에도 자물쇠가 있어, 그런데 이거는 모양이 특이해. 이건 방향 자물쇠인가 봐!”
사실 아이가 혼자 힌트를 풀어내기에는 벅차지만, 아이는 방탈출의 자물쇠를 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힌트를 찾아서 자물쇠를 여는 그 희열을 위해 나와 남편은 부지런히 힌트를 주워 모은다. 자물쇠는 사물함 자물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자물쇠가 있었다. 영문으로 된 자물쇠도 있고, 방향키를 암호처럼 만드는 자물쇠도 있다. 그리고 숫자가 많은 자물쇠도 있어서 가끔 수식을 써서 풀어내야 되기도 했다. 그중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물쇠는 바로 열쇠로 여는 자물쇠이다. 힌트가 있는 곳에서 열쇠를 찾고,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는 것이다. 가끔은 열쇠 뭉치가 있는 상태에서 자물쇠를 열게 되는 것도 있다. 보통은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로 가장 마지막 방문을 열 때 시간이 흘러가는 촉박한 상황에서 여러 개의 열쇠 사이에 진짜 열쇠를 찾아야 한다. 그 쫄깃함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마음을 가다듬고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와! 문이 열렸어!”
마지막에 진짜 열쇠처럼 보이는 것을 아이 가까이에 둔 남편의 센스 덕분에 우리 모두 기분 좋게 방을 탈출할 수 있었다. 방탈출 기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이는 방탈출의 후기를 재잘대며 남긴다.
“엄마, 그런데 그거 알아? 자물쇠만 달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게 된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그 방에서 그냥 구급상자였고, 그리고 문이었잖아. 그런데 거기에 자물쇠를 달고 나면 그 상자는 보물 상자로 바뀌고, 그냥 문은 방탈출 문이 되는 거지!”
아이의 말처럼 안에 있는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반대로 자물쇠이다. 자물쇠가 크면 클수록, 상자 안에 들어간 물건의 가치가 클 것이라고 가늠한다. 그래서 금고는 크고 튼튼하며, 아주 촘촘한 번호들의 암호로 다이얼키로 이루어있지 않는가. 나도 첫 자물쇠는 비밀일기장이었던 것 같다. 한 때 일기장에 자물쇠를 달아서 그 키는 내가 가지고 있고, 일기를 쓰고 나서는 자물쇠로 잠가 두는 걸 썼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가 그 자물쇠를 열어서 내가 엄마에게 혼나고 나서 엄마가 싫다는 말을 일기에 쓴 걸 보게 된 이후, 엄마가 서운했다고 얘기할 때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자물쇠 따위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구나. 대신에 그다음부터는 비밀 일기장을 여러 빈 노트 안에 섞어서 보관했다. 오히려 책꽂이에 노트가 더 많이 보이지만, 정작 그 비밀일기장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이도 조금 더 크고, 많은 자물쇠를 잠그고 열어보면서 알게 될까. 자물쇠가 있어서 오히려 더 많이 열어보고 싶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그래서 자물쇠가 아닌 상자를 먼저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소중한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은 오히려 잠가서 꽁꽁 넣는 것보다 바로 곁에 두는 것이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