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처음이라(21)
3위 : 마트를 혼자 갈 때
우리 집의 주말 일정 중의 하나는 바로 마트가 기이다. 신혼 때부터 시작된 우리 가족끼리의 암묵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신혼 때부터 맞벌이였기 때문에, 장 보는 것도 같이 하는 것이 익숙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큰 짐을 실어야 하는 주말 장보기는 남편과 함께 했다. 남편이 차를 운전할 수 있으니까. 그게 나중에는 아이가 생기고, 워킹맘이 되면서도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아이를 키우며 퇴사를 하고, 전업으로 집에 있었지만 장 보는 것은 엄두가 안 났다. 운전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끔 남편과 같이 마트를 가서, 뭔가 왜 사야 하는지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냥 당기는(?) 제품이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연예인의 브이로그에서 나왔던 마사지 팩을 하면서 같이 하기 좋은 괄사라던가, 괜스레 바꾸고 싶은 귀여운 마우스와 같은 것들 말이다. 왜 사야 하는지 이유를 말할 수도 없고 필요성에 대한 당위성을 증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냥 지금 제일 쌀 것 같고 사고 싶은 것. 그걸 산다고 해서 사지 말라고 남편이 화내는 건 아니지만, 비웃음은 당할 수 있는 그런 것. 그런 것 들은 장바구니에 넣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눈물을 머금고 보내야 하는 데, 요즘은 평일에 운전을 해서 마트에 올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귀여운 귀도리 모자를 봐둔 게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혼자 쾌제를 부르며 속으로 생각한다. ‘아싸, 내일 까지 세일이네. 내일 다시 와야지!’
2위 : 자차운전자 룩을 입을 수 있을 때
늘 BMW를 타고 다니는 시절이 있었다. Bus, Metro, Walk. 소위 말해 에코운동을 빙자한 대중교통 러버인 사람인데 딱 하나 자차 운전자들이 부러웠던 점이 있었다. 바로 '자차룩'. 그러니까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너무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거나 하는 날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이라면, 아무리 집 앞에 지하철 역이 도보 5분 거리라도 5분이면 충분히 구두를 신어도 스타킹에 물이 들어서 얼룩무늬 스타킹이 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구두를 사무실용으로 따로 챙겨놓고, 회사로 갈 때에는 레인부츠를 신거나 젖어도 괜찮은 굽 높은 운동화를 신고는 했다. 바람이 불고 추운 날은 또 어떤가. 햇볕이 따사롭게 보이는 가을날에도, 바람이 찬 날이 있다. 창문으로 보기에는 좋은 그런 날들 말이다. 그런 날에도 도보 5분 거리의 회사로 가는 길은 등에 칼바람이 꽂히는 기분이다. 그러니 그런 날은 아무리 예쁜 블라우스와 A라인 스커트를 스타킹과 함께 맵시 있게 입었어도, 겉은 무거운 코트나 카디건을 겹겹이 겹쳐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카페에 가서 옷을 벗는대에도 스카프에, 카디건에, 코트에 겹겹이 의자에 쌓이게 된다. 그에 반해 자차로 온 사람들은 가벼운 클러치 하나에 얇은 실크 블라우스 하나만 입고 온다. 그리고는 이야기한다. '밖에 바람이 많이 불어? 지하로만 다니니까 바깥 날씨는 몰랐네요.'라고. 그럴 때가 부러웠다. 그래서 요즘은 자차니까 얇은 드라이빙 슈즈도 신고 가보고, 그리고 가방도 무거운 노트북 백팩 가방은 차에 두고 얇은 클러치나 지갑만 두고 내리는 사치를 부려보곤 한다.
1위 : 엄마 병원을 모시고 갈 수 있을 때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엄마를 건강검진하는 곳으로 모시고 갔을 때이다. 효녀 코스프레를 한다고 건강검진을 예약해 주었지만, 정작 운전을 못해서 건강검진하는데 내시경 해야 되는데 내가 운전을 못해서 남편이 휴가를 쓰고 하는 상황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마음이 쓰이기도 했고 양쪽에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엄마의 건강검진을 호기롭게 예약했다. "엄마 내시경 해도 괜찮아 내가 운전하면 돼"라고 엄마의 비서를 자청했다. 사실 운전을 한다는 이유로 엄마는 너무나 당연하게 나의 비서를 자청했었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뿌듯했다. 사실 그거보다 더 다행이었던 점이 있긴 하다. 건강검진을 하던 중 보호자 호출이 왔다. 대장 내시경을 하던 중에 종양이 발견되었는데, 건강검진 센터에서 제거하기에는 센티미터가 조금 커서, 주변의 다른 병원으로 가서 제거를 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5cm까지는 여기 건강검진 센터에서 제거할 수 있는데, 지금 엄마의 종양은 6cm라서 지금 대장내시경을 하느라 약도 먹고 대장도 비어져 있는 상태이니, 오늘 내로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며 주변 병원의 리스트를 추천해 주었다. 병원 진료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주변 병원 리스트 중 초보운전인 내가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집 근처의 낯익은 병원이름이 보였다. 전화로 바로 예약을 하고 40분 안에 도착하면 바로 종양 제거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내비게이션을 켜고 달렸다. 시골에 계신 엄마이기에 다시 병원 예약을 잡고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기에 오늘 끝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도착한 40분. 바로 제거 시술을 시작하는 걸보고 아이들의 유치원 하원시간이어서 하원 셔틀버스로 변해서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오니 엄마의 시술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하원시간까지의 데드라인이 겹쳐져 있어서, 땀을 쥐고 운전했다. 내심 내가 운전을 했기에 이 모든 사람들을 케어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운전을 배우기에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