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0
어렸던 어느 날, 뉴스에서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라는 말을 흘러나왔다. 틀렸다. 사회시간에 분명 4천8백만이라고 했다. 아빠에게 물었다. 금방 2백만이 늘어난 것이냐고. 아빠는 ‘둘다 5천만이야.’라고 대답했다. 그 말투는 퉁명스럽거나, 냉소적이진 않았고 따뜻한 뉘앙스에 가까웠지만, 의문이 해결될 정도의 정보를 담고있지는 않았다. 4천 8백만이 어떻게 5천과 같지. 어른들의 숫자에선 2백만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작은 수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인가. 그 당시에는 다른 감정이 없는 ‘궁금함’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보다 낯선 단어에 귀가 닿았다. 타짜2에서 주인공 대길이가 일명 ‘탄’을 맞는 장면이었다. 대길이는 판에서 진 댓가로 9억9천8백40만원을 물게 되었다. 귀를 끈 단어는 이때 상대의 대사이다. “...이렇게 합시다. ‘무수리’떼고 9억 9천해서 12개월,, 나누면 얼마야. ... 한달에 8천 2백씩...” 너그럽게도 840만원을 감해주었다. 영화를 여러번 다시보게 되면서, 낯선 단어의 뜻이 궁금해져 찾아보게 되었다. ‘무수리’는 ‘고려ㆍ조선 시대에, 궁중에서 청소 따위의 잔심부름을 담당하던 계집종.(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한다. 영화 장면 속 비유라고 해도, ‘계집종’이라는 단어로 ‘무시해도 될 것’을 표현하다니. 약분이 일었다. 혹시 몰라 다른 단어를 찾아봤다. ‘우수리’를 검색해 보았다. ‘2. 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표준국어대사전).” 작가가 우수리라는 단어를 두고 무수리라는 단어를 씀으로서 의도적으로 비유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 보단, 나의 우둔함으로 우수리라는 단어를 무수리로 듣고 쉽게 분을 내었다는 게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약분했던 이유가 무지였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행히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생각했기에, 조금 부끄럽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이 일이 있고나서, 쉽게 화를 다른사람에게 표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숭고한 의미에서라기보다, 무지로 인해 생길 민망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이 이야기를 일기장에만 끄적이고 말았더라면, 이 글을 읽는 이의 수만큼 생길 추가적인 부끄러움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이미 틀린 노릇이다. 이제는 누군가 무수리와 우수리로 나를 놀려도 얼굴 붉힐 뿐, 일언도 덧붙일 수 없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각자가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우수리’를 떼면서 살아간다. 모든 것을 다 챙기기엔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앞서 2번을 소개했지만, 우수리의 사전적 의미는 두가지이다.
우수리
‘1. 물건값을 제하고 거슬러 받는 잔돈.
2. 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표준국어대사전).’
현금 사용이 적은 오늘 날, 용례1은 찾아보기 어렵겠고, 용례2를 적절히 사용해보려면 ‘남다’라는 말을 고민해보아야한다. 우수리는 ‘남다’와 관련된 단어이니까. 기본형인 ‘남다’의 많은 활용중. ‘남은/남았’과 ‘남는/남는다’의 차이에 집중해보려 한다. 동사를 명사 앞에 쓰기 위해서는 관형사격 전성어미를 붙여줘야한다. ‘남은’과 ‘남는’이 이 경우에 속한다. ‘남았-‘과 ‘남는-‘의 차이를 보면, ‘남았-‘은 영어의 과거형, 현재완료, 미래완료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건이 이미 일어난 과거형의 사례로는 ‘과자가 하나 남았다.’, 완료된 사건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재완료형의 사례로는 ‘물을 다 마시니, 빈병만 남았다.’, 미래사건이 이미 완결된 미래완료의 사례로는 ‘숙제를 안했으니 혼날 일만 남았다.’가 있겠다. ‘남는-’의 경우, 조금 더 간단하다. ‘-는-’은 현재 일어나는 사건을 의미한다. ‘노란색 사탕만 골라 먹으면, 빨간색만 남는다.’가 사례이다. 두 단어를 하나의 사례로 정리해 보면, 3명의 사람에게 7개의 사과를 나눠주는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개씩 나눠주고 1개가 남는 경우. 3명중 한사람에게 남은 1개를 더 주는 경우.
용례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나는 오랜 시간 ‘남은’과 ‘남는’사이에서 고민했다. 은과 는의 차이는 너무 커서 받아들이는데 많은 힘이 든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는지, 꽃은 피었는지 1달동안 고민했다는 김훈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간다. 나에게 ‘남는’은 객관적 서술이다. ‘남는’ 대상 자체에 집중한다. 대상의 선택으로 생긴 상황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그저 extra의 것이다. 이와 달리, ’남은’은 주관적 서술이다. ‘남은’은 ’남는’에 비해 피동적느낌이 든다. 누군가에게 남겨진 것이다. 남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질문하게 된다. 스스로 남겨진 것인지 타의에 의해 남게 된 것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피동 ‘남겨진’과 사동 ‘남긴’의 사이에선 피동과 조금더 가깝다.
놀이터에 혼자 있는 아이에게 묻는다. ‘왜 혼자 있니?’ 아이가 대답한다. ‘친구들이 다 학원에가서 저 혼자 남는 거에요.’ 이 문장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남는 것은 아이의 선택이다. 이 아이는 집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남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다 학원에 가서 저 혼자 남은 거에요.’라는 문장에서는 홀로 남은 아이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남은 것은 나의 의사가 아닌 것이다.
우수리는 잔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눈과 관심을 가져가는 주요한 것들이 아닌 것들은 ‘타짜’에서 처럼 떼어지기도 하고, 누구의 것이 되든 상관 없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대상이라면 나는 ‘남은 것’이라고 부르겠다. ‘남는’ 과자는 남에게 줘버리거나, 치우게 될 것이고, ‘남은’ 과자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챙겨가게 된다. ‘남는’ 종이는 필요가 적어, 활용을 고려하지 않게 되고, ‘남은’ 종이는 그냥 버리기 아쉬워 이면지로의 활용 등의 방법을 찾아 사용하려 할 것이다. ‘남는’ 시간은 어떻게든 때우려 들지만, ‘남은’ 시간은 소중히 사용해야한다.
소중한 것들은 보통 ‘남는’것들이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기에 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남게 되면 누군가에 의해, 그 가치가 발견되지 못해 ‘남게 된’, 피동적 대상이지 스스로 남는 것들은 없다. 그리고 강자들은 남길지언정 남겨지지 않는다. 남겨짐을 당한. ‘남은’ 이들은 주로 약자들이다. 우리는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지만, 남겨진 이들을을 돌아봐야할 책임이 있다. 어떠한 거대한 당위를 가져오지 않고, 아주 이기적인 동기 하나만 생각해도 그렇다. 우리 내가 언제 약자가 되고 남겨질지 알 수 없다.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것은, 지성인이라면 갖출 만한 ‘공감 능력’의 시작이다. 그러한 것들을 찾아, ‘남는’것이라 말하지 않고, ‘남은’ 것이라고 이야기 하겠다.
‘타짜’속 대길이의 상대에겐 840만원은 ‘남는’것이 어서 우수리가 되었다. 집단명사로서의 ‘5천만 국민’을 이야기하기에 2백만이라는 수는 반대의 의미로 ‘남는’ 것이어서 우수리가 되었다. 적어도 ‘남는’ 것이 아닌 ‘남은’ 것들을 우수리라 생각하진 말아야겠다.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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