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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Sep 13. 2023

“여유=선진국”vs“여유=힐링”,
그리고 학교 교육

  지난 11일 간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로 국외연수를 다녀왔다. 지인 선생님 한 분과 새로운 얼굴의 과학 선생님 두 분을 ‘낯선’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첫 잠을 청하는 시간, 침대에 누워서도 시차때문인지 잠은 안 오고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집이 낯설고 연수기간이 참 편안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린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꼬리에 꼬리에 물며 자문자답 끝에 내린 종착지에는 ‘여유’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첫 번째, ‘여유’ = 선진국

  프랑스에서 만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단어는 ‘여유’였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스타트업 대표 및 SAP 프로덕트/프로그램 매니저, 독일에서 만난 뮌헨공대 및 막스플랑크 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및 헬름홀츠 연구소 박사과정생,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하이델베르크대학 학생들 등 다양한 연령과 분야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추구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사람이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집중할 수 있는 문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시도, 도전, 실패의 경험을 존중해 주는 문화,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변덕과 변화를 인정해 주는 문화 속에서 여유를 느끼며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에서 느낄 수 있던 ‘여유’라는 건, 사전적인 의미 이상의 포괄적인 의미의 ‘여유’였다. 단순히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를 넘어, 시간이라는 관념과 자신에 대한 마음가짐과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것에 있어서의 여유도 포함이었다. 그들은 몸담고 경험하고 있는 그 과정속에서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 지금에 만족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입시 및 취업과 다른 사람의 기대와 시선에 쫒겨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청춘들과 이곳 청춘들의 문화 차이에 적잖은 부러움을 느꼈다.


  프랑스에서는 점심 시간이 2시간...’      

  이미 알고 있었고, 부러움에 대상이었던 문화였다. 그런 문화를 한껏 누리는 청춘들을 바라보며,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증명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연수였다. 카페 곳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의 모습, 지긋한 노부부의 산책, 푸른 잔디밭에 누워 볕을 느끼는 사람들, 반려견과 함께 강변을 거닐고, 비오는 날이지만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갑작스런 비에도 허둥대지 않고 느긋한 걸음을 걸으며 우산을 쓴 나에게 미소를 띄우는 프랑스와 독일인들을 만나며 그들의 여유를 느꼈다.

  기분탓인지 모르겠으나, 여유가 있으니 움직임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이런 삶이 건강에도 좋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프랑스와 독일사람들은 비만인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소시지 많이 먹고, 짜게 먹어도 비만 많지 않은 이유 역시 여유가 있는 삶 덕분이지 아닐까?     

  대학 입학을 위해 쫒기듯이 달려나가고, 졸업 후에는 또다시 취업을 위해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한국의 청춘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아니 그 아이들은 시간이 있었어도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할 수 있었을까? 배움의 최종 목적지가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었을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실패를 해도 경험으로 존중해 주는 문화, 무엇보다 쫓기지 않게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주는 교육환경이 갖추어졌다는 건 그 사람이 살면서 마음속으로 품을 ‘여유’의 양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나는 누구다’를 말할 수 있게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 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채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 집단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이 두 집단은 각각 삶의 행복감과 사회적 영향력이 차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에 있을 때 갑자기 내리는 비에 스위스 고등학생에게 우산을 함께 쓰길 권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산을 씌워준 그 학생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수능 100일에 교실에 앉아 있을 우리 학생들의 모습과 교차된다. 같은 나이지만 세계를 여행하는 아이와 수능을 위해 기출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다를까?

  7주간 수업을 하고 2주간 휴식, 그리고 여름 바캉스 2개월의 시간이 주어지는 프랑스 교육과정, 스타트업 과정에서도 박사과정에서도 의무적인 1년 휴학이 졸업조건이 되는 문화는 그야말로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선진국의 모습이다. 똑같이 우수한 사람들이 있고, 같은 시간을 살아감에도 여유가 넘치는 그들은 현재를 충실히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업적을 위해 나아가는 데에 힘이 부치게 느끼지 않는 것은 이런 일상에서 보장되는 여유때문이 아닐까? 프랑스, 독일의 힘을 ‘삶의 여유’에서 찾아본다.      



  두 번째여유 힐링

  낯선 분들과 낯선 장소에서 하루 평균 2만보 이상을 걸으며, 또 다른 낯선 사람을 만나는 9박 11일의 연수기간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여유’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렇게 떠나는 시간은 학교의 각종 공문과 업무, 작게는 가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내 마음의 여유를 준다. 가끔 전달되는 학교 업무와 공문이 여정중에도 마음을 흔들기도 했지만, 물리적거리를 핑계로 미뤄놓을 수 있음에서 오는 여유가 좋았다. 선생님들과의 대화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여유’였다. 

  프랑스와 독일 문화에서 느낀 여유는 선진국의 근원과 힘, 지속성의 뒷받침이 되는 것이었다. 나와 선생님들의 여유는 일상을 떠나는 힐링으로서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힐링이 되는 이 연수가 너무 좋았으면서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어느 나라에서는 일상의 여유 속에서 충분히 자신을 찾아가고, 자신이 하고 싶은 도전을 하며 성장한다면, 어느 나라에선 너무 쫒기다가 잠시 찾아오는 여유에서 힐링을 받아야 하는 상반된 현실이 서글펐던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임원, 스타트업 대표, 두 분의 연구원에게 물었다.  “다시 선택해도 프랑스와 독일에 오시겠어요?” 사람들은 망설임없이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목고를 나오셨고, 입시 교육환경에서 성장해서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그렇다면 입시위주 한국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울렸다.

  “만약 실패해도 괜찮고, 도전이 허용되고, 자신의 호기심으로 공부할 수 있고, 입시와 취업에 쫒기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면, 저는 시간 낭비 없이 더 빨리 이 자리에 왔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위치에 왔을 겁니다.”

  더 빠른 시간,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고 당당하게 무엇보다 여유롭게 삶을 즐기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만난 분들의 하나로 뭉쳐지는 말을 곱씹으며 내가 가는 길의 외로움을 달래본다.     

  ‘실패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것을 해’, ‘마음껏 도전해’, ‘여유로운 문화생활’ 등 내 어릴적부터 들었고 지향했던 문화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실재하는 프랑스와 독일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며, 우리 교육 문화도 그러했으면 희망해 보며, 새로운 희망을 심어본다. 

  전후 짧은 시간 동안 배고픈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렇게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수준의 나라가 되었다. 원한다면 얼마든 해외로 휴가나 유학을 갈 수도 있고, 때로는 외국인들이 배우고자 한국땅을 밟기도 한다. 전세계에서 한국이 주목을 받고, 좋은 이미지의 나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가난한 나라가 가르침과 배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맞는 또다른 한국 교육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여유’를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나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한국 교사들의 역량은 아직도 미개봉인 것들이 넘친다.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있다면 얼마든 선진국의 이름을 능가할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교육에 있다. 하지만 그 큰 문화가 변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어서도 어렵다. 같은 가치와 교육적 지향을 함께하는 목소리가 퍼지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라도 그러한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하고 싶다. 학교라는 작지만 큰 사회 안에서도 변화란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는 것이 변화의 첫 열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희망을 자물쇠에 끼워보며 새로이 시작될 2학기를 바라본다.     


  덧1. 프랑스와 독일에서 만난 분들의 공통된 특징이 하나 더 있다. 하루 시간을 쪼개서 생활하고 있었다. 미팅 스케줄이 줄줄이 이어져 있던 스타트업대표, 사전에 협조를 구하지 않으면 협조가 어려운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를 보며 위에서 언급한 여유가 풍족함이나 편안함, 게을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았다. 시간단위, 분단위 계획을 잡고 생활하는 빠듯한 삶 속에서도 여유가 느껴짐은 ‘하고 싶은 것’, ‘나의 일’을 한다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행복)이었음을 본다.     


  덧2. 자유롭고 다양한 문화예술의 도시,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리를 거닐어보면 알게 되는 파리의 문화․예술.인문.사회과학에서 선진국의 힘을 느낀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과학(유럽 최대의 실리콘 밸리 station – F)을 존중하는 문화. 이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정돈되고 절제가 있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과학.기술.자동차,철강 강국 독일. 어린아이와 장애인, 청소년부터 청년, 노부부까지 과학관을 한 참의 기다림 끝에 찾는 모습에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그들의 자존심과 힘을 느낀다. 자동차 박물관에서 자동차를 넘어 세계의 근현대 역사를 엮어 전시한 그 당당함과 예술작품을 함께 융합한 박물관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독일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철학과 인문학이 존중되는 문화.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접한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르면서도 유사한 강한 사회문화적 힘을 본다. 자전거를 타고, 때론 도보로, 때론 대중교통으로 자유롭게 서로 다른 세상을 탐구하고 탐방하며 여행을 하는 유럽인에 대한 부러움과 오랜 기간 그런 문화를 만들어 온 유럽의 힘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자리잡는 시간이었다.      

덧3. 혼돈의 시기 한국. 깊이 있는 뿌리보다는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키며 성장시켜온 지금. 이제는 빠르게보다는 차분하게 찬.찬.히. 뿌리를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지금의 혼란과 혼돈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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