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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itup Feb 28. 2024

한 발자국 멀리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과 진짜 좋아하는 것

나는 지난 회사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지만 입사할 당시부터 개발 직무는 아니었다. 사실 코딩을 막 시작한 2018년 1월만 해도 내가 개발자가 될 거라는 상상도 못 했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나는 첫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 아니, 그 비슷한 일들을 했다. 브랜드 판촉물을 제작하고, VIP 고객들에게 발송하고, 사보 콘텐츠를 작성하고, 여러 가지 짬뽕이 된 이 업무들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거 맞아?' 시기를 겪을 때 즈음, 나 역시도 심난한 시간을 보냈다. 이 업무를 계속한다 하더라도 전문성을 갖추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케팅 분야를 고집하고 싶지는 않았고 내가 노력한 만큼 성장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커리어 전환을 위해 퇴사를 하고 데이터 사이언스 부트캠프에 등록했다. 4개월 간 '문송합니다'를 수십 번 되내며 캠프를 수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 좋게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에 데이터 분석 직무로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사를 해보니 주먹구구로 성장해 온 스타트업답게(?) 분석할만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회사에 필요한 데이터를 선별하는 것까지는 내가 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외부 서비스에서 끌어와서 쓰기 좋게 적재해 줄 데이터 엔지니어가 없었다. 당시 사내에는 대여섯 명 남짓의 개발자가 있었는데 데이터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는 직접 데이터를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데이터 엔지니어링 업무에 속하는 개발 일들을 하며, 다른 팀에서 분석 요청이 들어오면 분석 일도 수행했다. 두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분석 업무보다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거나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개발 업무가 내게 더 잘 맞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발 업무에 집중하고 싶다고 어필하자 회사도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개발 직무로 변경이 되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구글의 도움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업무를 처리해 내면 실력이 한껏 성장해 있었다. 물론 간간히 정체기도 있었지만 뒤돌아보면 자라 있는 새싹처럼 쑥쑥 자랐다. 회사의 인정도 받고, 스스로도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구나'를 느끼면서 '나 데이터 엔지니어링이 좀 잘 맞는 사람일지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 후 일과 내가 분리된 후 회사생활을 찬찬히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과 진짜 좋아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개발자로 계속 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퇴사를 한 뒤에도 개발 공부는 계속했다. 회사에서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만 사용했으므로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도 접해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여 GCP의 데이터 관련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부했는데, 회사 일을 하며 재미를 느꼈던 것과는 달리 공부가 그리 즐겁지 않았다. 4년의 커리어가 아쉽고, 다시 돌아갈 구멍은 만들어놓아야 하니 마지못해 하는 느낌도 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 걸까?


회사를 다닐 때는 데이터를 쌓고 분석환경을 구축하는, '데이터 플랫폼'에 필요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공부하고 경험하며 많은 개발 분야 중에서도 이 일이 나한테 잘 맞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 일을 계속한 이유는 회사에서 그 일을 필요로 하고, 나도 회사에 기여하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개발을 접하게 된 분야가 데이터 엔지니어링이었고, 그것이 마침 애드테크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 회사의 니즈와 부합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지속해 온 것이었다. 또, 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AI 등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 많이 주목받을수록 유망한 직종에 종사하게 된 것이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니 생각이 정리되고 더 많은 기회가 보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디깅하고 새로운 것들을 공부해야만 하는 개발의 본질을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굳이 데이터 엔지니어링 분야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나는 프론트엔드를 공부한다. 공부해야 할 것은 많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 분야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금은 좋다고 생각해도 또 언제라도 그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한 발자국 멀리서 더 잘 보이기도 한다. 한 발자국 멀리서 생각해 보기 위해 꼭 퇴사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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