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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itup Jan 29. 2024

작은 성취감으로 채우는 하루

작은 성취감을 쌓아 큰 성취 만들기

퇴사를 한 후 쉼을 만끽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익숙한 친구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평생을 같이 해 온 '불안'.

앞으로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을 때는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이렇게 커리어를 멈추고 있어도 될까?', '앞으로 영원히 돈을 못 벌면 어떡하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 등...


이런 생각들에 잠식당하면 슬럼프가 찾아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특히 뚜렷한 목표에 동기를 얻고 매일을 치열하게 달려왔던 나는 '커리어 쌓기', '회사에서 인정받기'라는 목표가 사라지자, 자주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싸워야 했다.

그때마다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고, 또 다른 일들에 도전하도록 도운 건 '작은 성취감'이었다. 이 글에는 내가 매일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방법들을 기록해 본다.




걷는다

운동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가 질리지 않고 꾸준히 하는 운동은 오직 '걷기'인 것 같다. 남들보다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은 오래 할 수 있다. 회사에 다닐 때 재택근무를 하면서 활동량이 줄어들자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프리워커가 된 후에는 아예 걷는 시간을 따로 빼고, 나만의 걷기 루트를 만들었다.


효창동에 살 적에 가장 좋았던 것은 경의선 숲길이었다. 효창공원역부터 공덕역, 대흥역, 서강대역을 지나 홍대입구역까지 조성되어 있는 산책길을 걷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과 귀여운 강아지를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덕역 부근은 업무 지구인만큼 분위기 있는 카페나 음식점도 많아서 숲길을 걸으러 나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퇴근하는 회사원들, 데이트 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앞서가는 사람들, 뒤에서 걷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들의 관계를 추측하고, 이야기를 상상하는 즐거움은 매일 똑같은 루트도 새롭게 만들어주는 재미가 있었다.

매일이 새로웠던 경의선 숲길

그리고 그곳을 걸을 때면 도심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계절의 변화를 확연하게 즐길 수 있었다. 가로수 이파리에 새순이 돋아나고, 울창한 나무가 되고,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지기까지의 풍경...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거리를 가득 메우는 매미의 울음소리, 가을이 되면 서강대역 부근 공터를 가득 메우는 석양빛... 걷는 동안에는 매일 똑같은 것만 같은 일상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그 무렵 앱테크에도 빠졌다. 집에서 홍대입구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만보가 넘는 걸음수가 되었다. 다리가 무거워져서 힘들 때마다 앱을 켜서 걸음수를 확인하고, 10, 20원을 모으는 소소한 재미가 나의 걷기 여정의 작은 원동력이기도 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기분을 전환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걷기가 아니어도 좋으니, 좋아하는 운동을 15분이라도, 30분이라도 하면서, 오늘 하루도 내가 해냈다는 '오운완'의 성취감을 느껴보면 좋겠다.



정리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 감정들이 나를 잠식해 올 때 나의 생각과 계획, 행동으로 환경을 바꾸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은 바로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다. 일에 집중이 되지 않거나 정리되지 않은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때마다 나는 정리를 시작한다.

날이 갈수록 간소해지는 데스크테리어

가장 쉬운 것은 옷이다. 나에겐 그런 말이 와닿았다. 우리가 집에 평당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데, 옷들에게 그 많은 평수를 나눠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물론 나도 옷을 좋아한다. 옷 구경하는 것이 오랜 취미였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냐/안 입냐에 따라 그날 하루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새 옷이 없어서 괴로운 감정보다는, 내 손안에 들어온 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거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더 싫어한다. 그래서 안 입는 옷, 해져서 입기 싫어진 옷은 주기적으로 정리한다. 몇 년째 정리를 지속해 온 결과 이제는 날 잡고 옷을 정리해야 할 수준의 옷이 있지도 않다. 나는 이제 빠르게 오늘 입을 옷을 정할 수 있고,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신경쓰이는 날이 없게 되었다. 자리가 없어 억지로 욱여넣은 옷장이 가벼운 옷장이 되어가는 그 성취감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면 좋겠다. '이렇게 옷이 많은데 왜 입을 옷이 없지'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추천하고 싶다.


옷 외에도 주방용품, 식료품, 화장품, 책, 서류 등 비우고 정리할 수 있는 물건들은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들도 있다. 바로 '데이터'. 스마트폰 사진첩, 노트북의 수많은 자료들, 클라우드 스토리지, 꽉 찬 메일함... 사실 개수로 따져보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많은 것은 데이터일 것이다. 친구에게 공유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캡처한 화면들, 연사로 찍어댄 똑같은 장면의 사진들이 사진첩을 가득 메우면 어느새 사진 앱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게 된다. 사진첩 정리는 각을 잡고 하는 것 보다 남는 시간마다 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잠이 안 올 때마다 사진을 정리했다. 그리고 클라우드 스토리지에 백업된 사진들까지 정리했다. 그 결과 나는 이제 사진첩에 들어가 추억들을 감상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클라우드 서비스에 매월 지불하고 있던 비용도 절감된 것은 덤.

집념으로 사수한 클라우드 스토리지 공간

물리적인 공간은 물론 내게 주어진 가상의 공간까지 내가 모두 컨트롤하고 있다는 자신감, 오늘도 무언가를 정리해서 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일은 나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 되었다.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비우고 정리하며 간소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기록한다

나는 매일을 다르게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프리워커는 혼자 있는 시간이 직장인보다 많으므로 필연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감정에 휩싸일 때면 정리가 되지 않은 무언가라도 적어보는 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는 노션에 기록한다. 사실 나의 걱정은 루틴처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들이 많아 그때마다 느낀 감정을 적어놓으면 나중에 '내가 또 똑같은 걱정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구나, 결국 나는 그것들을 이겨내고 또 무언가를 했구나' 라며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보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날들이라고 생각해도 무언가를 하고, 기록을 남겨놓으면 나중에 그것들을 보며 그래도 매일 작은 것들을 성취해 나갔구나 하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사진도 정말 쉬운 기록의 방법이다. 몇 년 전부터 여행에 가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순간에만 사진을 찍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속할 수 없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인생 제법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한다. 그 순간이 산책을 하다가 예쁜 하늘을 마주쳤을 때나, 자주 가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처럼 너무나도 일상적인 순간이더라도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리뷰를 작성하거나,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기도 한다. 비록 예전의 생각들이 부끄러워 나중에 비공개로 돌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나의 기록을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발행하는 일은 언제나 뿌듯하다. 그리고 생각을 문장으로 가다듬으며 나의 자아가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한다.


기록은 '어느새 이만큼 쌓였네'라는 생각이 들 때 빛을 발한다. 그것들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성장했네'라는 증거가 돼준다. 가벼운 기록부터 누군가에게 공개하는 기록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기록하면서 나는 오늘도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고 있다.




얼마 전 보게 된 이연님의 영상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하루에 하나씩만 의미 있는 일을 해보세요. 하루에 이 일 하나만 해도 후회가 적더라,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더라, 하는 일을 만들고 이런 일들로 하루를 채워 넣으면 되는 것 같아요.

나도 이 말에 매우 동감했다. 작은 성취감은 자존감의 원천이 되고, 자존감은 큰 성취를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나는 오늘도 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작은 일들을 성취한다. 작은 성취감으로 하루를 채우고 잠자리에 들며 '오늘 하루도 잘 살기 위해 노력했네, 나 자신 장하다.'하고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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