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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itup Mar 27. 2024

나에게 투자할 용기

새로운 도전이 망설여질 때 생각해 보면 좋은 것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필요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재료는 결국 시간과 돈이다. 나의 경우 퇴사를 하니 상대적으로 시간은 많아졌지만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지자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는 것에 한 번씩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돈을 써서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기에 보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에 돈을 쓰는 것이 거리낌 없었다. 하지만 지출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기 시작하자 이렇게나 돈 나갈 때가 많았나 싶었다.


가죽 공예를 시작한 후에는 더 그랬다. 초반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필요한 도구들을 하나, 둘 사들였는데 가면 갈수록 어찌나 필요한 게 많던지.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브랜드 창업을 목표로 하자 하나에 100만 원이 넘는 기계를 두 개나 더 사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제품이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거 맞아?'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돈도 많이 써본 놈이 잘 쓴다고(?) 짧은 고민 끝에 시원하게 결제를 지르고 브랜드 운영을 빠르게 시작했다. 사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정말 소자본으로 창업을 한 것이었고, 그 이후로 돈 쓸 일은 무궁무진했다.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은 가능한 짧게’가 모토이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거나, 무언가를 구매해야 할 때 깊은 고민을 한다. 최대한 작은 비용으로 빨리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은 알지만, 결정의 무게는 모두에게 다르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할까 말까 할 땐 해라!’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고민이 될 때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은 것들이 있어 기록해 본다.



나를 신뢰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해보지 않았던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큰 두려움이 없는 편이었다. 내 생애 가장 뜬금없는 도전이라면 평생 수학을 두려워하고, 코딩 한 줄 적어보지 않았던 문과생이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해 보겠다고 퇴사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데이터 사이언스가 모든 미래 산업의 핵심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문과생들도 교양처럼 데이터 사이언스나 코딩을 공부하지만, 내가 퇴사했던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같은 백그라운드의 사람이 20대 후반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일단 해보겠다고 무작정 부트캠프에 등록할 수 있었던 건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면 어떻게든 수업은 따라갈 수 있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복수전공을 뒤늦게 정해 23학점을 꽉 채워 들으면서도 과 수석을 했던 기억, 교환학생에 가서 생각 없이 수학 과목을 수강해서는 친구를 붙잡고 과외를 받으면서까지 공부해서 결국 A+을 받았던 기억 등...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이뤄낸 성취들은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력하고,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셀프 믿음을 심어주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일단 그것을 잘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먼 기억 속이라도 더듬어보면서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결국 성취했던 것들을 생각해 보자. 조금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새로운 도전과 관련된 것들 중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거나 아주 작은 비용으로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 보자. 작은 성취들이 모여 더 많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봐도 되겠다는 자기 확신을 가진다면 도전이 조금 더 쉬워질 수도 있다.



써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이다

나만의 브랜드 창업을 고민하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유튜브에서 보게 된 인터뷰와 책에서 만난 구절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난을 판단하는 기준을 월급통장에 둔다면 이 부부는 오랜 기간 가난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새로운 경험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경험은 돈처럼 당장 무엇을 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그 이야기는 계속 쌓여서 결국 특별한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가 된다.

회사 그만두고 유학을 갑니다, 정유진
내가 가진 것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과 새로운 기회를 교환한다고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새로운 기회를 못 잡았어요. 기회라는 것은 행동을 옮기는 사람들한테 오는 거고 그 기회라는 게 확실하면 모든 사람이 그걸 잡죠. 당연히 불확실성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통해 내가 뭔가를 잃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교환한다고 생각해라. 내가 가진 것과 새로운 경험.

27년 차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인생이야기 [한기용] 1부, EO

최악을 생각해 봤다. 투자한 돈이 회수되지 않고, 매일 잠도 자지 않고 12시간을 몰두했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는 힘든 상황. 결국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을까? 지지부진하거나 굴곡이 있거나, 힘들어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결국 그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된다. 시도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과 실패라도 경험하는 것 중에 뭐가 나은 지는 그 누구도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경험은 결국 내 안에 남아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된다.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결국 점점 더 갈망하게 된다.

얼마 전 2017년에 썼던 플래너를 열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2018년 커리어 전환을 위한 퇴사를 앞두고, 퇴사 후 시간이 나면 가죽공예 브랜드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다고 적혀있었다. 물론 막상 퇴사를 하니 새로운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목표는 까맣게 잊혔고, 시간이 흘러 내가 그 당시에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2022년에 다시 한번 퇴사를 하고 결국 나의 브랜드를 운영하게 되었다.


얼마 전 만난 짤인데 공감이 가서 저장해 두었다. 결국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실행하거나, 결국엔 실행을 하지 않아 후회로 남게 되겠지. 살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이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한만큼,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그 도전을 지속한다면 그 경험은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에 다다랐음을 느낄 무렵 내가 했던 것을 후회할지,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지 한번쯤 상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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