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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재정의

에필로그

by 혜아

영화 <비포 선셋>에서 제시는 이렇게 말했다.


-자전적인 얘기인가요?

글쎄요, 모든 건 결국 다 자전적이죠.

우린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요.

토머스 울프의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에서 울프는 이렇게 말했죠.

'모든 인간은 각자 쌓은 체험의 총체이며 작가는 자신이 겪은 그런 체험을 글로 적을 뿐이다'라고요.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고 하는 파리의 작은 서점에서 시작된다. 작가인 남자 주인공 제시가 출간 기념 이벤트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것이다.


내게 작가의 정의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교정되었다. <비포 선셋>의 첫 장면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재정의된 작가의 의미를 제시가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울프의 소설에서 인용된 문장에 의하면 작가는 자신이 겪은 그런 체험을 글로 적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겪은 체험을 글로 적으면 작가가 되는 것이다.


브런치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안에서 글을 쓰는 모두에게 작가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작가들은 그 정체성을 가지고 글을 쓴다. 작가를 선별할 때는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에만 집중한다. 다른 조건은 필요 없다.


스스로 작가일 수 있는 힘은 그의 일상에 주체성을 부여한다. 마음속의 무언가를 글로 가시화시키는 순간은 깊은 몰입도를 경험할 수 있고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된다. 하루에 이런 순간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 시간에 우리는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누가 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적고 표현하는 건 모두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지금까지는 내 안의 어떤 것을 외부로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충만하고 깊은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여행은 삶의 큰 동력 중 하나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다니기, 사진과 커피, 원두는 콜롬비아나 브라질. 그리고 매일 음악을 들으며 걷고 운동하기. 이렇게 스스로 좋아하는 거의 모든 것은 그저 내 안에서 소화해 내는 편이었다.


어쩌면 생각이나 취향과 같은 자신의 뭔가를 나타내는 것에 취약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건 능력이나 재능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같은 곳에서 떠다니는 유행이나 트렌드는 피곤하니 그것에 대한 반사 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브런치를 만났다. 브런치는 적어도 한 번은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한다. 거부감에 대한 답습마저 사랑스럽게 활용해 보라고 제안한다. 글로 그려진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읽지 않았어도, 남는 것은 허무감이 아니라 현대 도시에서는 도저히 허용되기 어려운 깊은 몰입감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한다. 취향이나 생각을 공유하면 어딘가에 존재하는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유약하면서도 강한 연대감을 불어넣어 준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며 사고와 경험을 넓히고 경계 너머에 있는 멋진 것을 접한다. 원하는 모습을 그려 넣고 그 원점을 향해 변화하며 삶이 점차 확장된다. 무엇이든지 밝은 면을 활용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을 알고 그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을 쌓아 올리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중략) 그런데 예술가들은 가끔이라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는 생활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은 새로 깨달은 것을 정확하게 해석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숙성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꾸만 다시 자연스러운 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다시 어린이가 되기도 하며, 자신을 땅의 벗이요 형제라고 생각하며, 식물과 바위와 구름을 느껴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헤세에 의한 예술가의 의미를 따르면 예술가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재능의 유무보다는 '자신의 마음'이지 않을까.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 꼭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 다른 이가 아닌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그것을 물고 늘어질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어쨌든 그 모든 건 하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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