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지유 Aug 07. 2021

인어공주 언니 - 네가 동경하는 세상 속에서 행복했기를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작

막내동생이 스무번째 생일을 맞아, 물 위로 다녀오던 날.


물 너머로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면서 커다란 나무 파편들과 함께 사람들이 하나 둘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무서워서 차마 올라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폭풍이 불면서 배가 난파된 것 같았다. 동생은 그 폭풍이 다 지나가고 한참이 더 지나서야 돌아왔다.


듣자하니 난파된 배에서 왕자를 구해줬다는데, 힘들게 육지로 끌어올렸는데도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단다. 그러다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 날 이후 동생은 밥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방에 틀어박혔다. 그게 아니면 모두의 눈을 피해 몰래 하루 종일 물 위로 올라가 있다가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옆에서 아무리 말리려 들어도 절대 듣지 않았다.


이런 걸 상사병이라고 부르는구나.


어째서 나고 자란 이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르는 세상만 하염없이 동경할까.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아버지께 사랑을 덜 받은 것도, 자매로서 그 아이를 챙겨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내 동생을 항상 아끼고 사랑했고, 충분히 행복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물고기 꼬리를 가진 이상 절대로 밟을 수 없는 육지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인간 남자를 그렸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그렇게 슬프고 허무해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들이 사는 이 바닷속 세상은 더 이상 동생에게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 멀리 황폐한 바다에 사는 마녀의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마녀를 찾아 떠난 동생은 그 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의 이야기로는 마녀와 거래를 해서 두 다리를 얻는 조건으로 목소리를 내어줬고, 정해진 시간 내에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저주에 걸렸다고 했다.


목소리와 바꿔 얻은 다리는 땅에 닿을 때마다 칼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운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왕자를 만나 그의 사랑을 얻는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가 뭍으로 나가자마자 짐승들과 맞닥뜨리면? 말 못하는 그 아이를 보고 인간들이 마녀라고 몰아가면?


남은 자매들끼리 무작정 마녀를 찾아갔다. 그 거래는 말도 안 된다며, 없었던 일로 되돌리라고 따지자 마녀는 검을 하나 내밀었다. 왕자의 심장을 찔러 그 피를 발에 묻히면 다시 인어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잔인하기는 하지만,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우린 서둘러 물 위로 올라가 배 위에 선 동생을 찾았다. 새벽 동이 터오기 시작할 시간, 큰 배 위에 사람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왕자와, 그 왕자를 보며 웃는 동생이 있었다. 잠시나마 인간이 된 그 아이는 당장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는데도 얼굴에 그늘 한점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 되어 늘 동경하던 세상으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어 마냥 행복하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네 목숨과 바꿀 순 없어. 사랑이나 동경보다는, 그냥 네가 살아주는 게 더 중요해. 살아 있어야 사랑이고 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 우리가 아무리 울면서 간곡하게 부탁해도 결국 그 아이는 왕자를 찌르지 못했다.


동생은 기어코 내 눈앞에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야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아이가 왕자를 찌르지 못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자매들과 노는 것보다 물 위 세상이 궁금하다며 항상 그곳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며 할머니와 아버지를 졸라댔다. 내가 가장 먼저 물 밖을 다녀오게 되자, 부럽다며 죽어라 내 팔에 매달렸었다. 자매들이 차례로 물 밖에 다녀올 때마다 저쪽 세상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쫓아다니던 아이였다. 이윽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는 어찌나 기뻐하던지, 잔뜩 신이 나서 열심히 헤엄쳐 올라가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마도 그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왕자가 아니라 저 물 바깥의 세상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두 다리로 걷고 뛰고 춤추고, 같은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걸 꿈꾸는 것만으로 동생은 행복했던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능한 수단을 쓴 것뿐이다. 목소리를 잃고 고통스러워도 좋으니, 하루라도 인간이 되어 그 동경하는 세상에 살아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제아무리 죽음이 가까워도 도저히 자기 손으로 꿈을 내던질 수 없었을 것이다.


물거품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다니, 끝까지 말 안 듣는 동생이었다.


그렇게 짧지만 찬란한 인생을 살다 갔으니, 그 아이가 남기고 간 게 정말 많다. 나도 동생처럼 많은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을 언젠가는 찾을 수 있길 바라본다. 그치만 그 아이보다는 동생들이나 아버지 속은 덜 썩히련다. 내 상사병은 그 아이보다는 덜 아프고, 꿈을 이루는 대가가 동생보다 덜 무거웠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속은 또 얼마든지 썩혀도 좋으니, 부디 다음 생에도 자매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