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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Sep 22. 2023

소심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무서워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더라

나는 학창시절 내내 말없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손을 들어 본 적은 거의 없고, 수업시간에 지목당해서 뭘 읽을 때나 목소리를 냈으며 발표할 일이 생기면 기함을 했다.


시간이 지나 미대에 진학했어도 변함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스스로가 만든 작업물에 이름을 붙이기는커녕, 어딘가에 걸어놓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행위를 질색팔색했다. 결과물이 어땠던 간에, 작업은 내가 빚어낸 나의 일부라고 여겼고 그걸 남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은 내가 내면 깊이 감추고 있던 일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공을 바꾸고 인턴십을 하면서 수백명이 오가는 아드레날린 고밀도의 공간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갤러리에서 이메일, 전화, 직접 응대까지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심이 본능을 꾹 억눌러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일하는 게 불편했고, 계속 소심하게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것도 체력을 소비하는 일이라 금방 피로해졌다.


어떻게 했냐고? 그 순간만큼은 내 안에 있는 약간의 외향성을 최대한 끌어냈다. 보통 이럴 때 페르소나를 갈아끼운다, 마스크를 썼다 생각하라 하지만 나는 세상에 없는 사람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는 수다 떨기 좋아하고 남의 말에 잘 웃는 성격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족들이랑 가장 친한 친구들한테만 보여주는 말 많은 나 말이다. 아무리 조용하고 소심하고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인들, 대화를 평생 안하고 살 순 없다. 해서 순간적으로 사람을 상대하거나 안내를 해야 할 땐, 그 면을 끄집어냈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나랑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다' 최면을 걸면서. 소심이 특성상, 갑자기 호탕하게 낯선 사람과 찐친을 먹는 수준까지는 못했지만.. (지금이야 가능할 수도...?)


아무튼 이 소심이의 첫 사회생활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이 소심함 그 자체였다.


매사 걱정하고 무서워하고 생각이 너무 많았다. 막 시작한 사회생활은 두려움이었고, 갓 태어난 송아지마냥 파들거리곤 했다. 속으로는 내적 비명과 멘붕이 난무하는 상황, 아무리 감추려 해도 동공지진 때문에 다들 알지 않았을까. 뭐가 그렇게 무섭냐는 말에 나도 설명이 안 될 만큼, 걱정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겨울에 손이 추위로 바들바들 떨릴 때 양손을 부여잡고 떨림을 억지로 막아본 적이 있는지. 내적으로 마구마구 흔들리는 자아를 어떻게든 꽉 잡고서, 나는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애써 긴장을 감추려 했고, 애써 웃어보였고, 이 긴장과 떨림을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사실 언제부터 그런 성격이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잠까지 설칠 만큼 걱정을 많이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최근 아는 지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유학가서 혼자 오래 생활하다보니, 일종의 생존본능으로 그런 성격이 된 게 아니겠느냐 하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걱정이 많은 덕분에 가장 위태위태한 유학생활 첫 몇년의 고비를 무사히, 대형 사고 없이 넘길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이제 와서 원인을 생각한다고 해서, 이미 이렇게 생겨먹은(?) 성격, 바꿀 수도 바뀔 리도 없고.


지금은 '사회생활' 자아가 좀더 커져서 소심이 성격도 좀 사그러든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걱정이 많고 생각이 많다.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전날 반드시 악몽을 꿀 만큼. 대표적인 예로 시험 전날에 지각하는 꿈, 범위를 잘못 알아서 백지로 내버리는 꿈...중요한 미팅을 앞두고는 물건이 없어지고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해서 결국 미팅에 지각하는 꿈...정말 깨어나고도 이게 현실인가 싶을 만큼 생생하고 소름돋는 꿈을 꾼다. 

그 덕분에 수년째 J 성향이 90% 아래로 떨어지질 않고 있다.


그렇게 소심이에서 걱정쟁이, 스트레스쟁이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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