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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Feb 15. 2024

대학원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에 1년 더 있자고 석사 들어간 사람이 나예요

이전 글에 인턴으로 시작했던 사회생활 병아리 얘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프랑스에서의 석사 생활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프랑스 석사 기간은 2년. 국립대학 기준으로 M1 (1학년), M2 (2학년) 이렇게 부르는데 한 학교에서 M1을 수료한다 하고 반드시 M2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M1 따로, M2 따로 새로 지원해야 하는 시스템이며 덕분에 석사 2년을 다른 학교에서, 다른 전공으로 졸업한 친구들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필자 또한 그런 경우이고.


어쨌건 프랑스 유학 어느덧 5-6년차. 미술 실기에서 미술경영학교로 넘어가 꽤나 만족스러운 학사 생활의 막바지, 나는 석사 지원을 위해 일찌감치부터 학교와 전공을 알아보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꼭 석사를 요구하는 것이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지만, 아무래도 취업시장에서 석사 유무를 많이 보는 건 사실이다. 특히나 고학력을 요구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특히 외국인 유학생이라면 석사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APS" (autorisation provisoire de séjour. 임시체류허가증) 체류증. 석사 2년을 마친 외국인 유학생에 한해서 발급해주는 1년짜리 임시 체류증이었는데, 1년 동안 취업준비 기간을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고, 그렇잖아도 외국인 취업이 어려운 미술계에서 일할 거면 석사는 당연히 필요하다 생각했다. 해서 나는 대학원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중생이 되었다.


학사 3학년 당시는 이래저래 힘든 해였다. 학사 졸업에도 논문 과정이 있었고 인턴도 병행해야 했다. 학사 논문도 논문이기는 하다. 진짜 악랄했던 건 2년간 준비하는 석사논문과는 다르게 한 학년만에 완성해야 했다는 점. 아 물론, 석사나 박사보다는 교수님들 기준이 훨씬 너그럽긴 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제3외국어로 70페이지 이상의 글을 써야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러니 당장 학기 초부터 주제 찾고, 자료 조사하고, 글 쓰고, 교수님과 면담 밀당을 당하고 등등...부쩍 바빠졌다.


학업은 그렇다 치고, 이 때는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친하게 지냈던 또래 유학생/교환학생 친구들은 많이들 귀국했고, 같은 학교에서 함께 몇년간 유학했던 친구 한명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그런가. 지금 와서 그 시기를 돌아보면 즐거운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지배적이다. 잔병치레도 잦았고, 논문을 쓰면서 내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많이 느꼈고, 또 많이 울었다. 5년을 혼자 살면서 익숙해졌다 생각했던 자취방의 정적이 순간순간 낯설어졌다. 그 당시에는 아는 사람만 알던 ASMR을 알게 되었고, 매일 밤 영상을 틀어놓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다. 애써 꾹꾹 눌러왔던 외로움이 터져 나오기라도 한 듯. 본가에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마 어느 정도는 눈치채셨겠지 싶다.


아무튼 다시 학사 3학년으로 돌아와서. 미술경영학교란 게 워낙 특수한 전공이다 보니, 석사로 지원할 수 있는 루트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같은 학교에서 석사 코스를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사립이다 보니 학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파리 4대학 (우리가 흔히 아는 소르본 대학교) 같은 전형적인 국립대를 꼭 한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었다. 해서 미술사 전형으로 석사 코스를 알아보던 차에, 파리 3대학의 "médiation culturelle" 전공 석사를 발견했다.


"médiation culturelle"은 직역하자면 "cultural mediation", "문화적 조정"이란 뜻이 된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한 예술작품이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médiation culturelle이라고 본다. 이 학문에는 크게 정부의 문화정책 기획부터 작게는 도슨트까지 포함되는데, 석사 준비를 할 당시 나는 도슨트 인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꽤 솔깃했다. 전시회 관람객이나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작품을 좀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학문적 호기심이 일었던 것. 거기서부터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달리 가봄직한 곳이 없었기에, 다른 대학에도 지원을 하되 3대학의 이 석사 코스에 지원하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그게 3년간 논문을 3개나 쓰게 되는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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