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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Jun 09. 2024

와인 한잔으로 10시간 떠드는 나라의 토론법

토론의 나라는 어떻게 토론할까? 학사부터 석사까지 논문 3개 써본 고찰

어째 요즘 쓰는 글은 하나같이 고통받는 내용들인 것 같다. 하긴, 내 유학시절은 해마다 새로운 던전과 점점 더 강해지는 보스몹들을 만나는 것 같은 여정이었으니까. 최종보스는 결국 누구일까 지난 글은 프랑스에서 겪은 인종차별의 일화를 썼는데, 많은 분들의 공감을 받아 위로를 얻었다. 그런 의미로 또 한번 고통의 시간을 짚어보도록 할까.


아아 논문이여.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석사 1학년으로 들어가자 첫주부터 교수님들이 논문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미 각오하고 들어온 석사였다. 거기다 나는 대강적인 주제도 이미 정해두었는데, 몇개월 전에 썼던 학사 논문의 연장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하고 싶은 게 없었으니까.


여기서 프랑스 교육의 기본 골격이 되는 사고방식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프랑스 국민이라면 중학교부터 배우는 사고방식으로 이를 응용한 에세이를 쓰는 법을 배운다. 의무교육에서는 프랑스어, 철학 등의 수업에서 과제 또는 시험으로 치뤄지며 더 나아가 모든 논문, 토론 등에 사용되는 기본적인 구조라 할 수 있다. 구성은 다음과 같은데:


1. Introduction (인트로)

2. Thèse  (테제)

3. Antithèse (안티테제)

4. Synthèse (진테)

5. Conclusion (결론)


처음에 이론을 제기하며 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테제), 그 이론을 반대 시각으로 한번 더 접근한 다음 (안티테제), 마지막에는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이러저러한 점들을 통틀어보고 찬반을 모두 통합해 (진테) 약간 열린 결말식으로 매듭을 짓는 느낌이라 설명하면 될까. 최대한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며 토론의 여지를 계속해서 열어두는 것인데, 이게 프랑스식 정서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한국어로는 정반합(正反合)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프랑스 정서가 그대로 녹아든 교육의 부산물이라 보면 되겠다. 찬성과 반대, 중립의 결론을 모두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철학이 담겼달까. 이런 토론식 교육을 아주 어릴 때부터 시키니, 자연스럽게 토론의 나라라는 타이틀이 붙은것이다.


그래서인가, 프랑스인과 대화하다 보면 간혹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래서 얘는 좋다는 걸까, 싫다는 걸까?' 호불호는 굉장히 뚜렷하지만 흑백논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옳다 vs. 그르다 식의 논의도 거의 보지 못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라고 물으면, '옳다'와 '그르다'의 정의란 무엇인가부터 다시 돌아보는 것이 프랑스식 사고인 것이다. 중학교 시절 처음 접한 이 개념에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야, 무언가를 주장할 때는 내 의견과 그 뒷받침이 가장 중요한데 왜 굳이 반대 의견에까지 이입해야 할까? 심지어 마무리는 열린 결말이라니, 그러면 주장이 주장이 아닌 게 되지 않나? 내가 제시하는 주장의 논점이 흐려지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토론의 골격이라 생각한다. 의견에 대한 뒷받침은 물론, 반대편에서 바라본 의견이 어떻게 비춰질 있는지에 대해 의식하며 반박거리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 찬반 양쪽에서 바라본 주제대한 본질과 전체적인 그림을 논하며 토론은 풍부해지고 깊이감을 얻는다.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모든 프랑스식 에세이와 논문은, 이 토론을 "저자의 머릿속에서", "글로" 옮겨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아직 한국식 정서에 익숙하고 수동적인 타입의 학생이던 내가 이 사고를 이해하기까지 "학사논문 - 석사논문 - 석사졸업프로젝트"까지, 무려 세 단계의 산을 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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