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지유 Oct 08. 2019

미술유학 첫해, 해메고 해메다

말 잘하는 건 생각보다 소용이 없더라

유학생들끼리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말만 잘 했어도."


필자는 중학교 때부터 프랑스어 교육을 미리 받았던 사람으로, 이른바 언어에 불편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입학했을 때는 이미 프랑스어 공부한지 8년차였고, 프랑스 수능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간 도시는 여전히 낯설었고 처음 발 들이는 학교, 처음 보는 동기들은 어색했고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난생 처음 듣는 학교로 다같이 전학온 느낌이랄까.


뭐가 그렇게 어려웠는가를 생각해 보면:


1. 같은 프랑스어인데 못 알아듣는다

아무리 언어를 몇년 했어도 실제 프랑스인과 대화한 일이 많이 없으니 일상대화가 늘 리가 있나. 이 때 당시 내 프랑스어가 얼마나 이상했냐면, 그림의 기법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몇몇 과일/꽃/동물/일상적인 물건 이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언어붕괴는 아직 현재진행형...) 내가 다녔던 학교의 지역이 지방 사투리가 강해서도 있지만, 사람들이 평상시 대화할 때 쓰는 용어들이나 신조어, 특히 대중문화에 관한 것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결과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면 늘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2. 대학 신입생은 원래 해메기 마련

한국에서만 자라 한국 대학에 다녔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하물며 외국에서 대학을 가니 얼마나 생소했겠는가. 것도 일반 대학도 아닌 미술학교...대학교라고 해서 자기 수업을 자기가 정할 수 있다? 놉. 그런 거 없다. 프랑스의 일반 국립대는 그럴지 몰라도 미술과 건축 등 특수학교들에서 신입생들은 무조건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받았다. (나중에 학년이 올라가서 과가 나뉘면 또 수업이 나뉘면서 달라지지만) 신입생 당시 내 시간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고등학교와 다를 게 없었다. 결과 매일매일 몸이 죽어날 판이었다. 학교가 아무리 집에서 6분 거리라 할지라도. 낯선 도시, 낯선 학교를 낯선 동기들과 함께 이 수업 저 수업 좀비처럼 오다니다 보면 하루가 끝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것들이 과목이 되고 학점이 높아 당황스러운 건 덤.


3. 좋아하던 그림으로 학교를 다닌다는 건

학교란 여러 과목들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그로 인해 점수를 받아 그 점수를 통해 진급 또는 유급을 하는 곳이다. 그렇다. 프랑스는 초중고, 대학부터 대학원까지 유급이란 게 존재한다. 학점이 모자라면 유급, 거기서 더 모자라면 퇴학도 가능하다.

집에서, 그리고 학원에서만 그리던 '취미'였던 그림을 '학업' 삼아 여러 과목으로 나눠서 '공부'를 하자니 이게 또 낯설었다. 그림이 마냥 좋아서 시작했는데, 그림 그리기가 '숙제'가 되고 이것으로 '점수'가 매겨져 평가를 받았다. 이러니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성적을 생각하자니 도저히 즐겁게 할 수가 없었고, 마냥 열심히 한다고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라 스트레스는 늘어만 갔다.

도대체 교수들이 말하는 좋은 그림은 무엇인가? 학점이 잘 나오는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


4. 그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

신입생 때는 교수들이 내놓는 주제에 맞춰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가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점차 자유주제는 늘어났고, 스스로 생각해야만 했다.

미술학도라고 해서 모두가 창의력이 넘쳐나고 미칠 듯한 영감이 샘솟지 않는다. 내가 보고 듣는 주변 환경은 내 그림=점수, 더 나아가 학점에 100% 그 이상의 영향력을 끼쳤다. 지방 도시이다 보니, 갈 만한 곳도 없고 재료 살 곳도 변변치 않았다. 시내 미술관도 작고,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시 수준) 먼데다 파리는 3시간 반 거리. 날씨도 나쁜 지방이라 흔히 말하는 눈호강조차 못하는 그런 현실. 이렇다 보니 작업환경은 늘 열악했고 주제/소재가 고갈을 넘어 멸망 상태였다. 영감이라는 단어조차 민망해질 만큼 너무 소재 고갈이다 보니, 내가 그리는 것들은 늘 한정적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재미도 사라져갔다.


이렇듯, 나의 유학생활은 첫 단추부터 쉽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파리에서 미술을 한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