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지유 Oct 28. 2019

유학은 애매한 독립이었다

일상, 학교, 행정. 환장의 콜라보레이션

처음 온 프랑스 지방에서 맞은 1학년 1학기기 시작하고 약 두달이 되어갈 즈음. 이제 좀 자리를 잡아간다 싶었을 즈음 타이밍을 다시 돌아보자면, 이 때가 첫번째 고비가 아니었을까 싶다. 집을 구하고, 인터넷 선을 연결하고 핸드폰을 등록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첫 고지서들과 서류들이 날아올 이 시점 말이다.


만 열여덟, 부모님과 처음으로 떨어져 나만의 공간에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했지만 그닥 무섭게 생각하거나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면 무서울 게 없다) 사춘기를 정통으로 맞았던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늘 혼자 방에 틀어박혀 나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살았기에 그리 혼자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혼자가 된 것에 대해 자유로움을 느꼈달까.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우왕좌왕했다.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끓여본 적 없었고, 혼자서 장을 본 적도, 혼자서 온 집안을 청소해본 적도 없었다. 이랬던 내가 학교 서류, 은행 서류, 핸드폰/인터넷 고지서, 매달 내는 월세, 세금 내는 법 등등…이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부모님 도움도, 친구 도움도 바랄 수 없었다.


하지만 뭐 어쩔 것인가. 먹고 살긴 계속 살아야 하고, 학교도 계속 다녀야 하니 나갈 수밖에.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 연속 개근상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웬만해서는 병결도, 조퇴도 해본 적 없다. 개근상 받는 학생들이 다 그렇듯,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괜시리 학교 출석일에 대한 고집이 남아있어서 학교를 결석하는 게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여겨졌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공부를 하러 머나먼 외국까지 왔으며, 내 생활은 말 그대로 "유학"생활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학교였고, 학교생활이었다.


 « 학교를 다니면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 이런 기특한 생각까지는 유감스럽게도 가져본 적 없다. 그저 학생이기에, 초중고 시절부터 축적해온 습관대로 단순무식하게 « 학교 가야지 »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녔다. (여기서 말하는 « 열심히 »이란, 그냥 « 꼬박꼬박 »의 의미) 수업 하나하나 버티고 점심시간을 보내고, 또 수업 하나둘씩 버티고 나면 하루는 그냥 끝났다. 시간표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던 만큼, 일상이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 해서 딱히 밖에 놀러다니는 것 없이 그냥 집에만 있었다. 일단 지방의 작은 도시라는 점, 놀러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고 기차표는 비싸다는 점, 비싼 기차표를 내고 가도 가장 가까운 대도시까지는 왕복 3시간이라는 점, 비싸게 돈 내고 가려면 1박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또 돈이 들고 귀찮았던 점… 가지가지 한다 이런 걸 다 고려하자니 어딜 놀러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학창시절부터 그다지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탓에, 학교가 끝나면 잽싸게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뭘 했냐?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미드…개미지옥같은 정주행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 당시 내 생활에서 일상, 학교 그리고 행정의 비율은 얼추 학교 65%, 일상 25%, 행정 10%이었던 것 같다. (가끔 학교 35%, 일상 65%일 때도 있고 행정 95%, 학교+일상 5%일 때도 있었다) 행정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자면, 마치 잊을 만하면 꼭 돌아오는 각설이 같은 존재랄까. 월세 내는 날은 매달 귀신처럼 돌아왔고, 우편함은 잠잠하다가도 불현듯 은행/부동산/시에서 알 수 없는 서류가 날아와서 나를 잔뜩 긴장시켰다. 그것도 다들 하나같이 돈을 내야하는 무언가, 또는 언젠가 돈을 내야만 하는 일들.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물고기를 뜯어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려오는 상어 같았다. ???: 또 뭐!!! 뭔데!!!? (포효) 특히나 세금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썰이 많으니...차후에 좀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도 행정언어는 딴 세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아직 두꺼운 한불, 영불 사전을 잔뜩 가지고 있었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찾아보고 또 찾아봤다. 그렇게 해도 모를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부모님의 눈이 닿지 않는 먼 외국. 연락도 지금만큼이나 빠르고 쉽지 않았고 (2010년…무려 카카오톡이 만들어지기 전이다) 학교생활+일상생활+행정처리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지만, 부모님의 보내주시는 생활비로 부지했다. 그러니까 경제적 도움 없이 자급자족으로 유학 오는 사람들은 정말정말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까지 돌이켜보니, 유학생활이란 게 참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독립생활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유학 첫해, 해메고 해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