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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an 05. 2022

밤은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년이 넘게 불면증과 싸웠다. 자려고 누우면 새카만 어둠 속에 무언가  있는  같았다. 피곤에 절어 잠이 쏟아지는 날에도 눈을 감으면 귀에다 누군가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귀신을 믿지도 않고 그런 존재를 눈으로  적도 없지만 그런 밤이면 잠드는  너무 무서웠다. 이십  중반을 지나면서 종종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다리에 쥐가 나고, 쥐를 풀려고 몸을 비틀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없었다. 목이 쉬게 소리쳐도 목소리는  밖으로 뱉어지기는커녕 아무도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 날은 밤새 눈을 뜨고 어둠 속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다. 부모님은 아침에 눈물범벅이  나를 발견하고 미친 듯이 흔들어서 공포 속에서 끄집어내 주었다.

 또 어떤 날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비친 그림자가 나를 괴롭혔다. 밖에 누가 있나? 도둑이 든 건 아닐까? 저 창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나를 죽이면 어떡하지. 그림자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베란다 밖 창문은 다 닫아놔서 집에 바람 한 점 불 수 없는데 저 그림자는 왜 흔들리지? 자세히 보니 사람 그림자 같기도 하고, 곁눈질로 볼 땐 끊임없이 흔들리다가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보면 그림자는 갑자기 사라진다. 그런 날은 더 잘 수 없어서 일어나 벽을 보고 앉는다.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서 명상을 해 본다. 명상이 도움이 되고 말고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서 나를 짓누르는 천장을 견딜 수 없을 뿐이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물으신다.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꾼 거냐고. 혹은 누구랑 통화라도 한 거냐고. 어느 날부턴가 자다가 혼잣말을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잠꼬대가 아니라 혼잣말에 가까웠다. 몽유병처럼 온 집 안을 헤집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이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 아주 가끔 그렇게 혼잣말을 하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 깰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가족들에게 ‘이제 자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적어도 내가 이런 증상을 자각하고 있을 때는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의사인 J는 이런저런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조현병이 의심된다고 했다. 제대로 진찰해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으니 하루빨리 병원에 가서 제대로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 말을 들은 날부터 전보다 더 불안이 심해졌다. 길을 걸어도 뒤에 누가 있는 것 같고, 처음 보는 사람도 괜히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조현병일까. 나는 그냥 미친놈인 걸까. 병원에 갔다가 내가 미친 걸 모두가 알면 어쩌지. 혹시라도 준비하던 시험에 붙으면 정신병력이 결격 사유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의 늪에 빠져 점점 더 숙면하는 삶에서 멀어졌다.

 상담을 받았다는 건 차마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 부모님이 얼마나 무너져내릴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성격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지난 경험을 떠올리며 비슷한 패턴으로 상처를 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피했다. 피하지 못하면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섰다. 상대는 작은 일에도 날을 세우는 나를 더욱 못마땅해했다. 누구에게도 이런 공포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얼마나 큰 공포가 밀려오는지 도저히 설명할 재간이 없다. 운 좋게 잘 설명해서 누군가 이해해 주더라도 ‘그래도 푹 자야지’ 하는 대답을 듣는 게 전부였다.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은 게 아닌데.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력해 보겠다’는 말로 상황을 벗어나 본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을 추천받았다. 밤마다 내가 떠올리던 온갖 생각, 망상, 후회를 헤세는 ‘사색’이라는 말로 묶어두었다. 독일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만행을 보며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시를 받아야 했고, 무력한 자신을 탓하며 그의 내면은 곪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으로의 도피는 헤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더불어 밤은 거친 삶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 인생, 기억을 이야기하며 헤세는 지나간 날을 추억하고 현재를 살아내며 드는 생각, 미래에 대한 고민 등을 글로 옮겼다. 결은 다르지만 밤마다 내 머리속을 두드리는 생각과 비슷한 점도 있었다.


 헤르만 헤세는 ‘행복’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덧없고 잔인하고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화려하다. 인생은 인간과 인간의 정신을 비웃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인간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행복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많은 이유를 떠올리며 삶이 온통 불행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행복이 뭔지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법륜스님이 강의하는 행복학교에도 다녔다. 몇 년 동안 행복학교를 다녔지만 여전히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오히려 불행은 잊을 만하면 장대비처럼 삶을 적셔왔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에 대한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뻔한 소리를 들으려고 이런 강의를 찾아본 게 아닌데, 하며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행복은 그 뻔한 말속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악몽을 꾸고 하루에 세 시간도 푹 자지 못한다. 꿈에서 내내 쫓기고, 도망 다니고, 울고, 소리를 지른다. 길게 자 보려고 열한 시에 누우면 12시 반, 3시, 4시 반에 꼭 눈이 떠진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 동시에 늘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밤은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불면증은 온밤 내내 그저 나를 훑고 지나갈 뿐이다. 헤르만 헤세처럼, 밤마다 계속되는 사색의 조각을 모아 머리맡에 놓고 잠을 청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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