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일에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 깨달았다. 간혹 나의 삶에 스키드마크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20대의 나는 용서할 수 없이 미운 사람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미워했다. 그러려고 결심하지 않아도 자꾸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가 밉다는 생각이 울컥울컥 치밀었다. ‘미움’이 올라올 땐 몸 상태부터 달라진다.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가슴에서 피어오른 불덩이는 손끝을 지나 머리 꼭대기와 발끝까지 빠르게 퍼진다. 온몸으로 퍼진 불덩이는 몸집이 줄어들기는커녕 마음 속에서 점점 그 덩치를 키운다.
그쯤 했으면 됐다, 는 말을 들을 때까지 이 감정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자려고 누워서도 자꾸 생각나서 결국 어딘가에 토해버리고 싶기까지 하다. 그럴 때면 일기를 썼다. 불타는 감정을 글로 옮기고 나면 그나마 한김 누그러졌다. 하지만 이것은 잠깐일 뿐, 아침에 눈을 뜨면 기다렸다는 듯이 폭풍처럼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 때 이런 말을 했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이렇게 말을 할까 수없이 고민하며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내내 혼잣말로 화를 내 본다.
삼십 대가 되고부터 미워하는 마음에 쏟은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이 감정 하나 때문에 무엇을 해도 진심으로 즐겁지 않았다. 머릿속을 비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숙제를 끝내지 못한 것처럼 마음 한구석에 끈적하고 뜨거운 불덩이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 잠깐 행복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나를 온전히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미움을 쌓는 속도로 돈을 모았다면 진작에 백만장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워하는 마음은 브레이크 없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뒷목부터 정수리 중심까지 선이 그어진 듯 당기고 아프다. 무슨 짓을 해도 이런 마음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든 원인이 매번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그저 내 마음을 손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은 대부분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속도를 늦췄다.
미워하는 마음이 피어나는 상황이나 대상은 너무나 많다. 이런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면 일단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차라리 낫다. 서로 넘지 않을 선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어서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 사그라든다. 문제는 상대와 내 마음의 속도가 다를 때다. 나는 이미 한 발을 물러났는데, 상대는 두 걸음이나 성큼 다가온다. 여기서 슬금슬금 계속 뒷걸음을 칠지, 그대로 서서 상대를 맞이할지 결정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가 된다.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을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들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다른 상황이었어도 여전히 이런 사람이 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른 상황에서 만난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마음을 적당히 데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미워할 열정이 없다. 마음 속의 불덩이에 찬물을 끼얹는 법을 배우고, 미워하는 마음에 쓸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자한다. 간혹 미움의 불씨가 남아 아무리 발로 밟아도 꺼지지 않는 것이 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안고 살아가려고 한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미움의 불씨를 지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미움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믿는다.
무언가를 너무 많이 미워하는 것도, 또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도 전부 체력을 바닥내는 지름길이다. 마음의 온도는 몇 도쯤이 적당한지 모르겠다. 가끔은 강제로라도 정확한 수치에 맞춰 마음을 데우고 싶어진다. 기분이 좋아지는 온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온도가 몇 도인지 알 수 있다면 마음 속 불덩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저 이제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체력보다는 사랑하는 것을 돌볼 수 있는 체력을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