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 유난히 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자기 업무뿐만 아니라 상대의 업무까지 꿰고 있어서 일정에 맞춰 저글링하듯 일을 주고받을 때의 쾌감이란. 이 직업을 선택한 후 나와 한 몸처럼 일하는 사람을 몇 번 만났다. 그런 사람과 일할 때는 조금 일이 엇나가도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일하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다.
최근 두 달 동안은 열심히 산을 올랐다. 분명히 지도를 보고 산책 코스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함께 가는 사람이 자꾸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을 누가 처음 한 걸까.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 서울을 지척에 두고 다른 곳을 두리번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신도림에서 영등포구청까지 두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데, 그는 자꾸 2호선 외선순환행에 몸을 싣는다.
두 달째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더니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기획서를 보내고 메일과 통화로 몇 번이나 목적을 설명했다. 래퍼런스는 열몇 개쯤 보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상대가 내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이해를 못 하고도 묻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설명을 하다 지쳐서 이제 그냥 내가 혼자 틀어진 방향을 바로잡고 있다.
엇나가는 관계에서 처음 기획을 한 내가 항상 옳다고 우겨도 되는지 고민될 때가 있다. 집필을 제안받고 글을 짜내는 작가도 자기만의 그림이 있을 테니 정답이 무엇일지는 독자의 반응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운명공동체로 엮여 있어야 한다.
아무튼 아직 미성숙한 편집자의 시각에서 나는 작가가 내 기획과 다른 방향의 글을 보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작가가 생각하는 기획 방향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내 제안을 거절하거나, 적어도 방향을 바꾸자는 협의를 요청했다면 좋았을 텐데. 촘촘하게 짜 놓은 틀 안에 맞지 않는 글을 꾸역꾸역 구겨 넣으며 오늘 유난히 힘들어졌다.
그간 손발이 잘 맞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를 몇 번 만났다. 이렇게 티키타카가 되지 않는 이들과 작업할 때마다 그들이 그리워진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발을 묶고 이인삼각 달리기를 해야 한다. 잘 맞는 사람들과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이인삼각 달리기에서 우승한 기분이었다.
발을 한 쪽씩 묶고도 잘 달릴 수 있었던 건 상대의 발을 내 발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나의 첫발이 상대의 두 번째 걸음이란 것을 아는 배려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