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첫인상을 전적으로 믿는 편이다. 얼굴의 주름을 보면 한 사람의 지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듯, 도서 표지를 보면 내가 흥미를 느낄 내용일지 아닐지 느껴진다. 단순히 예쁘기만 해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색감, 제목 배치, 이미지 콘셉트 등이 얼마나 조화로운지를 기반으로 취향에 맞는 표지를 고르게 된다. 그렇게 내용을 모르고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산 책들 중에 나를 실망시킨 것은 거의 없었다.
직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자주 서점에 간다. 새로 나온 책의 표지를 보며 괜찮은 디자인을 꼭 메모해 둔다. 그중에는 내가 기획할 책에 참고할 것도 있고, 단순히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서 소장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리고 내용이 궁금해서 읽고 싶었던 책 중에 실제 표지의 느낌을 보고 싶었던 것도 있다. 직접 디자인할 실력은 없지만, 서점에 가면 실력자들이 만든 예쁜 책들이 많아 눈이 즐겁다.
표지에 홀려 읽고 싶은 책이 한 트럭이다. 서점사 사이트에서 읽고 싶은 책을 한가득 찾고 퇴근하면 서점에 간다. 꼭 해 보고 싶은 디자인은 비용이 높아져서 정작 업무에는 적용하지 못한다. 그럴 때는 디자인만으로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붙여 보기도 한다.
표지가 어색하지만 내용이 궁금해서 산 책은 실망 경우가 많았다. 작가의 필력도 엉망이고, 내용도 산으로 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럴 때는 표지가 왜 어색하게 나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방향을 못 잡고, 편집자도 손을 댈 엄두를 못 내는 원고. 그 원고로 어떻게든 컨셉을 정해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면 디자이너도 도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정에 쫓기며 작업을 했을 일련의 상황이 그려진다.
사실 내용이 썩 괜찮지 않아도 살리고 싶은 책에든 도서 소개나 상세 이미지에라도 열과 성을 다하게 된다. 책 광고다, 표지가 사기다 이런 말을 듣더라도 어쩔 수 없다. 독자를 기만하겠다는 게 아니라, 원고에 쏟은 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글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것이 편집자의 마음이다.
내용을 잘 반영한 표지를 보면 편집자도 그 글에 얼마나 애정을 쏟았을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작가라면 슬럼프로 마음에 드는 글을 써 내지 못하더라도 표지가 예쁘면 힘이 날 것 같다. 요즘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 표지가 예쁘게 나와서 기분이 좋다. 첫인상이 좋은 책을 만나면 작가와 눈을 맞추는 기분이다. 그래서 좋은 작가들과 오래도록 눈을 맞추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