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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ul 08. 2022

이인삼각 달리기에서 우승하는 법

일을   유난히 합이  맞는 사람이 있다. 자기 업무뿐만 아니라 상대의 업무까지 꿰고 있어서 일정에 맞춰 저글링하듯 일을 주고받을 때의 쾌감이란.  직업을 선택한  나와  몸처럼 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 사람과 일할 때는 조금 일이 엇나가도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일하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다.


 최근 두 달 동안은 열심히 산을 올랐다. 분명히 지도를 보고 산책 코스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함께 가는 사람이 자꾸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을 누가 처음 한 걸까.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 서울을 지척에 두고 다른 곳을 두리번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신도림에서 영등포구청까지 두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데, 그는 자꾸 2호선 외선순환행에 몸을 싣는다.

 두 달째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더니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기획서를 보내고 메일과 통화로 몇 번이나 목적을 설명했다. 래퍼런스는 열몇 개쯤 보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상대가 내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이해를 못 하고도 묻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설명을 하다 지쳐서 이제 그냥 내가 혼자 틀어진 방향을 바로잡고 있다.

 엇나가는 관계에서 처음 기획을 한 내가 항상 옳다고 우겨도 되는지 고민될 때가 있다. 집필을 제안받고  글을 짜내는 작가도 자기만의 그림이 있을 테니 정답이 무엇일지는 독자의 반응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운명공동체로 엮여 있어야 한다.


 아무튼 아직 미성숙한 편집자의 시각에서 나는 작가가 내 기획과 다른 방향의 글을 보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작가가 생각하는 기획 방향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내 제안을 거절하거나, 적어도 방향을 바꾸자는 협의를 요청했다면 좋았을 텐데. 촘촘하게 짜 놓은 틀 안에 맞지 않는 글을 꾸역꾸역 구겨 넣으며 오늘 유난히 힘들어졌다.

 그간 손발이 잘 맞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를 몇 번 만났다. 이렇게 티키타카가 되지 않는 이들과 작업할 때마다 그들이 그리워진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발을 묶고 이인삼각 달리기를 해야 한다. 잘 맞는 사람들과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이인삼각 달리기에서 우승한 기분이었다.


 발을 한 쪽씩 묶고도 잘 달릴 수 있었던 건 상대의 발을 내 발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나의 첫발이 상대의 두 번째 걸음이란 것을 아는 배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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