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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ul 27. 2022

미로에도 끝은 있지 않겠어요?

 이별 통보는 늘 쉽지 않다. 어떤 좋은 말로 포장해도 상대와 나의 마음에 상처가 남게 마련이다. 내가 먼저 관계의 끝을 통보하며 화살을 쏜 것을 알면서도, 상대가 되쏘는 말이 뾰족하게 나를 찌른다. 최대한 무딘 날로 아프지 않게 베려고 해도, 스친 날에 베인 사람은 두고두고 아픔이 찾아오던 순간을 곱씹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픈 말을 주고받아도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다 이제라도 끊어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때가 있다.


 메일 한 통을 보내려고 사흘을 고민했다. 정작 메일을 쓰는 데에는 1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신중하게 말을 고르느라 머리가 아팠다. 짧은 말 한 마디로도 누군가의 삶을 깊게 찌를 수 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꿈 꿔 온 미래를 쉽게 접어 버리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재능이 없다고 한 사람의 노력과 꿈까지 빼앗아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알아보지 못한 그의 재능을 나보다 더 안목 있는 누군가가 발굴해 줄 테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의 안녕을 빌었다.


 글 쓰는 재주가 없다고 해서 작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런 이들은 아무래도 집필 과정이 순탄치 않다. 글재주는 없지만 좋은 콘텐츠가 있는 작가에게는 집필 제안을 하게 된다. 물론 집필을 제안하기 전에 내가 작가보다 더 꼼꼼하게 기획을 해야 한다. 그럴 때면 한 사람의 눈을 가린 채 손을 잡고 미로에서 길을 찾는 기분이다. 눈을 가린 사람은 처음부터 앞이 안 보이던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눈을 뜨고 길을 잘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할은 이미 '눈을 가릴 사람'과 '앞장 서서 길을 안내할 사람'으로 정해져 있어서 바뀔 수가 없다.


답답해서 안대를 푼 작가는 나에게 안대를 쥐어 주고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그간 미로를 헤매며 곳곳에 표식을 해 두어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이려던 찰나였다. 왜 미로의 끝이 나오지 않냐고 보채기만 하는 작가를 겨우 어르고 달랬다. 잔뜩 지친 그의 심정도 이해가 됐지만, 나침반을 쥔 건 나라서 마냥 함께 손 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자꾸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는 작가를 말리다가 나도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우리가 둘 다 고통받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원하시는 곳으로 가세요. 저는 방향이 달라서 이쪽으로 가겠습니다."


 힘들어하면서도 이별까진 원하지 않았는지 작가는 참아 왔던 분노를 꼭꼭 뭉쳐 메일에 담아 보내왔다. 이전에 주고받은 메일을 보고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받은 메일을 다시 읽었다. 잔뜩 흥분해서인지 두서 없는 비문이 잔뜩 눈에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고칠 부분을 드래그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사람에게 이별 통보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사람에게는 좀 더 정리된 글로 메일을 써 주세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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