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Oct 12. 2022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식사, 운동, 쇼핑, 카페 가기, 독서, 글쓰기 등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잘하는 편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굳이 혼자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있다. 최근에는 독서, 글쓰기, 또다른 취미까지 이 세 가지만은 한 명이라도 함께 할 사람을 구해서 했다. 세 개의 취미는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는 있지만, 진짜 즐기는 것은 행위가 끝난 후에 감상을 나누면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다른 사람과 섞이지 않고서는 혼자 아무리 즐거워도 끝내 고독해지게 된다. 아무리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도 소통하는 사람이 전혀 없이 살라고 하면 '살아있음'을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적적해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렇게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면 또 사람에게 상처 혹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시 혼자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고독의 딜레마에서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몇 년 동안 하던 독서모임을 잠깐 쉬다 보니 혼자 책을 읽는 게 재미없어졌다. 꾸준히 혼자서 책은 읽고 있지만, 이를 나눌 사람이 없으면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다. 마음이 급하지 않아서인지 서평을 쓰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독서모임을 열기로 했다.

새로 연 독서모임의 첫 만남에는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모이기로 했다. 맨 처음 모임에 가입한 사람은 만나기 전부터 관심을 보였다. 꽤 적극적으로 모임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아서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마침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 만나기로 했다. 보통은 약속을 잡고 나면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는다. 아직 서로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물어볼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사는 곳부터 시작해서 나이, 직장, 하는 일, 취미를 묻더니 급기야 통성명을 하자고 했다.

다른 질문들은 적당히 피하거나 얼버무렸는데, 이름의 경우에는 본인이 먼저 자세한 신상 정보를 언급하는 바람에 나도 이름을 가르쳐 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거절하지 않은 게 조금 후회됐다. 만나기도 전부터 온갖 신상정보를 물어본 그분은 자기 취미생활까지 같이 하자고 세 번쯤 물어봤다. 전부 에둘러서 거절했지만 그쪽은 내가 거절했다고 느낀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나가 본 여러 모임 중에서도 독서모임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독서모임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내가 만난 독서모임 사람들이 비슷한 결이었다.

만나기 전에 질문을 쏟아냈던 그분은, 모임에 와서도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대부분은 독서와 무관한 신상 이야기였다. 한 시간은 책을 읽고, 한 시간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모임 시간에도 15분쯤 늦게 왔는데, 앉아서 20분이 넘게 수다를 떨었다. 나는 포기하고 그 대화를 배경음악 삼아 혼자 책을 읽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일단 모임을 진행한 후에 각자 담소를 나누자고 했다. 겨우 진정시키고 책을 읽는데, 그분은 책을 읽는 시간 내내 핸드폰만 만지고 있었다. 슬쩍 보니 책 내용을 메모장에 정리하는 거였다. 각자 책을 읽는 방식이 다르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돌아가며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고 했다. 어차피 시간 내에 다 읽지 못할 것 같아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할 내용만 찾아본 거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책 내용은 거의 설명하지 못했고, 또다시 본인 신상에 관한 수다로 이어졌다. 어차피 첫 모임이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 큰 기대는 없었지만 시간이 조금 아까웠다. 읽은 책의 내용을 말하지 못할 바엔 나 혼자 읽고 끝내는 게 더 즐거웠을 텐데.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반쯤 무당이 된다. 몇 마디 말만 나눠 보면 이 사람과 나의 미래가 보인다. 보고 싶지 않아도 느껴지고, 듣고 싶지 않아도 속마음이 들린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분은 예전에도 독서모임을 해 봤다고 했다. 다만, 한 모임에 두 번 이상 나간 적이 없었다. 취미는 아주 많았지만 대부분 '아직 해 본 적은 없고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바빠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모임이 파하고 저녁을 먹고 싶어 하기에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모임 사람들과 반대쪽 길로 걸어갔다. 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모임이 세 시간쯤 걸렸다. 독서모임을 하는 내내 마음이 허했다. 독서모임을 쉬는 동안 읽은 책이 많아서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며 외롭지 않은 취미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다시 혼자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앞으로 이 쳇바퀴를 몇 번이나 더 굴려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갸’는 ‘저’ 머리 위의 ‘슈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