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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Nov 02. 2022

100에서 0까지

법륜 스님의 강의에서 ‘상대가 준 말의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계속 열어 보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의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더라도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상처를 상기시키면 나만 손해라는 이야기였다. 쓰레기를 준 상대를 원망하기보다는, 어서 그 쓰레기봉투를 묶어서 집 밖에 버려야 한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방 한구석에 두고 매번 봉투를 열어 ‘이 쓰레기를 그 사람이 줬어!’라고 상기하는 것은 결국 나만 손해를 보는 일이다.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기쁨이라는 감정도 세세하게 나누어 보면 설렘, 흥분, 벅참 등 좀 더 다양하고 세세한 차이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무안함, 부끄러움, 분노, 당황, 짜증 등 여러 감정이 있는데 정작 이런 상황에서 ‘기분 나쁘다’는 말 한마디로 표현하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그물에 싸인 큰 수조 같다. 찰랑거리는 물을 언제든 쏟을 수 있지만, 나는 계속 찰랑대는 물이 언제 쏟아질까 두려워하며 그물 사이로 수조를 보고 있다.


매일 하루를 정리하며 꼭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다.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모두 비워내는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도 부정적인 감정도 모두 비우려고 한다. 매일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수치가 100이라고 하면 잠들기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수치를 0으로 만들고 잔다. 단순히 그 감정을 잊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도 감정을 내다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가수 아이유는 우울할 때 그 기분에 속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기분은 절대 영원하지 않고, 5분 안에 바꿀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환기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날려 버린다고 했다. 감정은 한순간이다. 기체처럼 사라질 감정에 사로잡히기 전에, 감정의 안개를 걷고 다시 마음의 수치를 0에 맞춰 본다. 눈을 뜨면, 내일은 다시 새로운 감정으로 나를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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