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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미 May 08. 2024

재즈의 리듬, 정신분석의 리듬

<재즈문화사>를 함께 읽어보아요 (2) - 블루노트, 재즈의 리듬

♬ 매미의 속삭임 :  


   “ 제가 희원이 작가님의 작품에 첫눈에 반한 이유, 그건 까닭이 없는 게 아니에요.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작가님은 글을 하나씩, 혹은 두 개씩 꼬박꼬박 올려주시거든요. 그렇게 부지런히 글을 올리는 모습이 첫 번째 이유예요. 그리고 글마다 독특한 주제와 특별한 배치, 그게 바로 두 번째 이유랍니다. 게다가 글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절대 강요하지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펼쳐져서 마음을 깨워요.


   보통 저는 작가님의 글을 출근길에 한 번, 점심때 다시 한번, 그리고 저녁에 스쳐 지나가듯 다시 읽어요. 그럴 때마다 마치 작은 씨앗이 싹트는 것처럼, 나에게 없던 영감이 쑥쑥 자라나서 시를 쓸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왜 이렇게 작가님의 글에 끌리는지 명확한 이유를 몰랐어요. 그러다가 '재즈문화사'를 읽고 나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재즈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 정신분석을 좋아하는 마음과 아주 닮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도 언젠가 희원이 작가님처럼, 정신분석 문화사를 쓸 정도로 열정이 자라고 커질 수 있을까요? 아,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 , 리듬

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reo’, 즉 흐르다는 뜻이라고 해요. 리듬은 사전적으로 ‘움직임의 형태가 시간에 따라 질서 있게 연속되는 것, 그리고 움직임의 다양한 단계가 서로 이어지는 빈도’로 정의됩니다. 이러한 리듬은 소리와 눈으로 인지되거나 예전의 기억 혹은 자신의 생각 흐름으로 느껴질 수 있죠.     


또한 리듬에는 시각적 요소, 청각적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 외에도 낮인지 밤인지, 어떤 공간에 있는지, 바라보는 색상, 배경의 소리, 냄새, 듣는 이의 감정 등 모든 것이 리듬을 함께 만듭니다. 이런 과정은 꿈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이해가 가능하죠. 꿈을 꿀 때는 우리 눈은 감겨 있지만 아주 많은 리듬이 담겨 있어 그 리듬을 통해 정신분석가와 함께 분석작업을 함께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 리듬은 아기들한테서, 특히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기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전 ‘강경 작가님’의 연재 브런치북 <심장에 가까운 노래>이라는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죠! 이탈리아 정신분석가 Suzanne Maiello는 소리(정신분석 용어로 sound object라고 했으나, 이 글에서는 그냥 소리라고 하겠습니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소리란, ‘아이가 출생 후 기억 속에 간직하는 소리와 리듬에 대한 태아기 기억의 총체’라고 정의했고, 여기에는 산모의 목소리도 포함했어요.     


아기는 태어나게 되면서 리듬의 변화를 겪게 돼요. 아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자궁 내 리듬 연속성은 태어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자궁을 빠져나와 산도 끝 세상의 빛을 바라보고 첫울음을 터트릴 때, 탯줄은 잘리고, 엄마의 심장 소리와 멀어지며 자신의 심장만으로 뛰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강경 작가님’의 연재 브런치북 제목인 <심장에 가까운 노래>는 그 제목에 정말로 깊은 뜻을 담고 있어요.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몸을 통해 듣던 노래가 아닌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노래와 소음에 배치되게 되면서부터, 아기는 외부에 존재하는 엄마의 돌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의 돌봄은 뱃속과 다르게 아주 리드미컬하게 되죠. 엄마의 젖을 빨고 싶은 것, 소변/대변이 마려운 것 등의 아기의 기본적인 욕구에는 리듬이 있게 되고, 리듬 그 자체가 욕구이며 삶의 기원에 닿아 있죠.




♪~ , 재즈

지난 글에서, '노예의 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재즈의 태동이라 볼 수도 있죠. 아기가 산도를 빠져나와 리듬의 변화를 겪듯이, 흑인들은 미국에 노예로 팔리면서 핏빛의 산도를 지나서 새로운 심장의 리듬을 가지게 된 것이라 볼 수도 있어요.


재즈문화사의 2장 <근접하는 음, 블루노트>에서, 희원이 작가님은 블루노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해주셨어요.


블루노트는 어느 한 지점을 지향하지만, 끊임없이 그곳으로 수렴할 뿐 그 지점에 놓이지 않는다. 이를 표현하는 사람마다 음정의 떨림은 미세하게 달라지지만, 그렇다고 그 음이 지향하는 지점에서 완전히 이탈하지도 않는다. 마치 항성을 중심점으로 타원형 궤도를 도는 행성과도 같다. '그것은 항성의 자리에 놓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항성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원을 그리지도 않는다. 블루노트는 그렇게 하나의 지점에 가까워졌다 거기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결코 궤도를 이탈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까, 재즈의 리듬은 다른 음악처럼 예상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리듬이면서 리듬이 아닌 느낌이에요. 사전적 정의로 이전과 같은 리듬이 반복되고 연속되지 않으니까, 리듬이 아닌 것 같지만 분명히 리듬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거라고 생각되는 거죠. 아니, 그 자체로 재즈만의 리듬, 블루 노트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라는 것에서 출발을 한다면, 재즈의 흐름은 ‘노예의 피’를 통해 출발을 했고, 그것의 리듬이 계속해서 분화하고 다양해지기 위해선,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희원이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리듬의 사전적 정의를 버렸어요. 리듬이란! 단절과 연속성이 동시에 있어야 하는 거죠. 단절은 연속성을 예고하게 되고, 반복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며,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다시 뱃속의 태아가 탄생하는 것처럼, 새로운 리듬이 생성됩니다.



이러한 리듬이 정신분석에도 살아 있어요. 정신분석은 두 사람이 만드는 즉흥 하모니입니다. 정신분석가와 피분석자의 사이, 서로 공감하며 함께 울림을 느끼기도 하는 연속이 만들어졌다가도, 무한히 만나지 못하는 그 단절의 간극이 있어요.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요. 하나의 마음이 되어 함께 그 정신세계를 경험하려 하지만 무한히 수렴만 할 뿐, 절대 닿지는 않는 블루노트와 비슷합니다.     

 


앞으로의 제 진료실은 재즈의 리듬이 흐를 겁니다. 환자의 리듬과 저의 리듬을 조화롭게 맞추려 할 거예요. 재즈가 가진 미묘함과 긴장이 정신분석이 가진 그것과 비슷함에 전율을 느낍니다.



이번 글도, 2장 <블루노트>의 마지막 단락으로 마무리 지을까 해요.    



       

이처럼 ‘진짜’ 재즈에는 정확함과 미묘함의 긴장이 지속된다. 정확함과 미묘함은 대치하듯 공존하고, 공존하듯 다시 대치한다. 블루노트는 재즈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정(情)이다. 냉정하게 굴다가 가끔 온정을 베풀고, 가끔은 상대의 실수를 ‘묵인’하고 ‘허용’하며, 상대의 잘못을 ‘용인’하고 ‘포용’한다. 연주자마다 다른 감의 블루노트를 연주할지라도 그것들은, 공존한다. 그 음들이 때로는 모호하게 들리지만, 조화로운 연주일수록 결코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끈기 있게 공존하면서 기어이 ‘합리’의 지점으로 무한 수렴한다.     









끝난 줄 알았죠?

  
프로이트가 사랑했던 루 살로메를, 사랑했던 릴케의 시를, 사랑했던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제가 릴케의 시를 제 마음대로 재즈 식으로 불러볼게요.

저는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만 잘은 못 부릅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Master of Verse 천재시인 릴케의 시를 노래로 부르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I Am Much Too Alone in This World, Yet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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