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미 May 15. 2024

재즈, 흩어지는 음을 담다.

<재즈문화사>를 함께 읽어보아요 (3) - 모방, 반복과 기억

  지난 시간 블루노트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블루노트는 재즈만의 고유 리듬입니다. 이번 글에는 재즈를 통해 필사와 모방, 반복과 기억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요.      




♪,  정신분석적으로 바라본 필사와 모방


  프로이트는 1896년 12월 6일에 플리스*에게 보낸 52번째 편지에서, 무의식의 기억 흔적이 때때로 다시 기록되면서 지속적인 층화 과정을 거치듯이, 음악에도 역시 타자성과 유산을 처리하는 특정 도구가 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인용한 괴테의 말에 따르면, 유산은 소유하기 위해 다시 획득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재즈문화사>를 읽고 필사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글을 써서 희원이 작가님의 글을 소유하듯이요.   

   

  좋아하는 글이나 시를 필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 브런치 스토리에서도 필사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최근에 유미래 작가님의 이해인 시인의 '4월의 시'를 필사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글씨가 참으로 정갈하고 아름다워, 원래 이해인 시인의 시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4월의 시'를 유미래 작가님만의 것으로 다시 소유하신 것이죠.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필사를 하게 되면 기존의 자신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의미와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사뿐 아니라 낭송이나 낭독도 비슷합니다. 필사나 낭송 그리고 낭독은 내용을 그대로 복제하기 때문에 원저자의 개인적 흔적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원래의 출처에서 실질적인 연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주제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탄생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님의 고운 필체처럼 자신만의 제스처를 통해, 유미래작가님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음악에서 필사와 비슷한 건 뭘까요?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악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을 소유하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하죠.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아는 작곡가, 바흐는 1713년과 1714년에 바이마르에 머물면서 빌헬름 에른스트 공작의 궁정에서 안토니오 비발디의 협주곡 중 적어도 9곡을 필사했다고 합니다. 왜 필사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충분히 추측 가능하지 않나요? 비발디의 음악을 그대로 기억하고 소유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뤼네부르크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던 초기에 당시 거장들의 작품들을 그대로 베꼈으며, 원곡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브런치 작가님들이 종종 하는 필사와 비슷한 과정을 창작 초기에 거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제 재즈!


  <재즈문화사> 8장의 제목은 “흩어지는 음을 담으려 하다”입니다.   

  희원이 작가님께선, 음악을 기억할 수 없음을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어요.      


  기록은 기억의 욕망이다. 사람은 기억하고자 기록한다.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은 기록된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기록을 통해, 망각되기를 거부하는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 어떤 방식의 기록도 과거를 불러내어 기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음악은 본질적으로 기억의 욕망을 거스르는 예술이다. 음은 구체적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고, 예술이 되는 순간에 연기처럼 흩어진다. 유럽고전 음악가들은 그 음들을 담아내기 위해 악보를 고안했고, 음을 기록했다.

  그것은 진정한 음이 아니었다. 화석화된 음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반드시 연주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연주는 음의 기록을 기억하는 행위였다. 연주자는 창조적 제의를 통해 음을 낳고 그 순간, 음을 잃는다. 음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결국 선율을 품어내는 기억을 통 실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의 추상성을 막연히 더듬을 수밖에 없다. 그 가변적이고 순간적인 망이 너덜해지는 것을 넋 놓고 지켜봐야 한다. 기억에겐 비극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재즈는 어떻습니까? 즉흥이지 않습니까. 즉흥연주를 악보로 만들 수 없지만, 발달된 기술 덕분에 재즈 음악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재즈를 반복해서 듣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죠.

    

  희원이 작가님께서는 위 단락에서 진정한 음을 악보로 나타낼 수 없다고 하셨지만, 8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어요.


  만일 '순간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자'의 기록을 들으며 화석화된 세계가 생생하게 마음에 와닿는 착각이 든다면, 그래서 대상에 대한 '오해'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이해'로 재탄생할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거짓'은 차고 넘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사람은 기억으로 기록하고, 기록으로 기억한다. 그 행간에 무수히 달릴 개별성의 주석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기억에겐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것을 만든 예술가들을 '천재'라고 평하며 마음에 조각을 새겨 영원히 기억하려 하지요.




♪,  반복과 기억


  우린 노래를 들을 때 중간에 멈추는 경우가 드뭅니다. 글은 반대로 읽을 때 멈추는 경우가 많지요.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멈추지 않고 단숨에 이 글을 읽고, 원한다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어떠한 책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셨다면 세계적인 작가가 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반복하며 기억하기 때문에, 글 같은 경우 이미 지나간 부분으로 다시 저절로 눈을 옮기거나 허공을 보며 머리에 떠오르는 느낌과 상들에 집중하곤 합니다. 노래를 들을 때는 그렇지 않지요, 물론, 플레이어의 되감기 기능을 사용할 수 있지만, 대개는 곡을 되돌려 거꾸로 듣지는 않습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1843년 저서에서 반복을 "결코 지치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 행복을 가져다주는 '앞으로의 회상', 영원에 가까운 끝없이 새로워지는 과거를 영적으로 다시 소유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반복이 새롭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도 '반복'이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됩니다. 특히 정신분석의 핵심인 무의식에 관한 개념 중 '사후성(영어로는 afterwardness, 독어로는 Nachträglichkeit)'이란 개념이 있는데요. 이 개념은 인간 정신이 특정 시간에 속하지 않고 불연속적이며 과거와 현재 사이를 양방향으로 이동하여 반복을 수반한다고 설명합니다.      




♪,  읽고 듣는 시가 된 재즈


  재즈의 블루노트에서도 지각된 소리와 리듬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 미래를 아우르는 끝없는 '반복'으로 서로 연결됩니다. 기억이 없다면 음악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이미 들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나 리듬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반복은 재즈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의 고유한 특징이며, 재즈에서의 반복은 단순한 재확산이나 재생산을 넘어서, 시간을 포함하며 기대와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지난 글에서, 리듬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절과 연속성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요. 연결과 연결의 해체가 반복되어 예측 가능성과 놀라움의 상호작용이 바로 재즈의 기본 연산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이제 우리는 복제 대생산하여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또한 볼 수 있습니다. 가사를 통해서 말이죠! 음악이자, 시가 되는 순간이 재즈에게 온 것입니다, 읽고 들을 수 있는 시가 된 것입니다. 불확정성과 탈규정성, 음악에서의 재즈, 문학에서의 는 퍽 잘 어울립니다. 시와 낭송(song)의 결합, 우리는 <시낭송 공동매거진>에서 이미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 공동매거진의 공동저자 서민혜 작가님께서 감사하게도 제 시 <새벽별의 노래>를 우쿨렐레 반주와 함께 노래로 불러주셨어요.


  여기까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신비롭고 아름다움 춤을 함께 춰보아요.
  읽는 글과, 듣는 글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겨보아요.




   흩어지는 음을 잡으려 시가 된 재즈,
   감성의 리듬을 가슴에 울리려 노래가 된 시.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

     







* 플리스는 스위스 이비인후과의사로, 프로이트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료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이론을 개진하는 동안, 14년간(1887~1902)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관점에 대해 조언하며 그를 격려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가 알려주는 양자역학: 버키볼 실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