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문화사>를 함께 읽어보아요 (3) - 모방, 반복과 기억
기록은 기억의 욕망이다. 사람은 기억하고자 기록한다.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은 기록된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기록을 통해, 망각되기를 거부하는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 어떤 방식의 기록도 과거를 불러내어 기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음악은 본질적으로 기억의 욕망을 거스르는 예술이다. 음은 구체적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고, 예술이 되는 순간에 연기처럼 흩어진다. 유럽고전 음악가들은 그 음들을 담아내기 위해 악보를 고안했고, 음을 기록했다.
그것은 진정한 음이 아니었다. 화석화된 음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반드시 연주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연주는 음의 기록을 기억하는 행위였다. 연주자는 창조적 제의를 통해 음을 낳고 그 순간, 음을 잃는다. 음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결국 선율을 품어내는 기억을 통 실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의 추상성을 막연히 더듬을 수밖에 없다. 그 가변적이고 순간적인 망이 너덜해지는 것을 넋 놓고 지켜봐야 한다. 기억에겐 비극적인 일이다.
만일 '순간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자'의 기록을 들으며 화석화된 세계가 생생하게 마음에 와닿는 착각이 든다면, 그래서 대상에 대한 '오해'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이해'로 재탄생할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거짓'은 차고 넘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사람은 기억으로 기록하고, 기록으로 기억한다. 그 행간에 무수히 달릴 개별성의 주석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기억에겐 다행한 일이다.
흩어지는 음을 잡으려 시가 된 재즈,
감성의 리듬을 가슴에 울리려 노래가 된 시.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