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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이 Sep 04. 2024

섹스, 죽음, 그리고 거짓말

전적으로 정직해지기


섹스는 침묵 속에서 속삭인다.

죽음은 조용히 다가온다.

거짓말은 부드럽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섹스는 사랑의 가면을 쓴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원초적인 갈망이 숨어 있다. 손끝이 살결을 따라 움직일 때, 두 눈이 서로의 심연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이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다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공허일까, 혹은 더 깊은 욕망일까? 섹스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탐색하게 하지만, 그 탐색은 결국 타인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는 모순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정직해지려는 훈련을 받는다. 그 훈련의 끝에서, 우리는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정한 욕망과 대면하게 된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 그러나 멀리 있다. 우리는 죽음이 옆에 있는 줄 알면서도, 애써 눈길을 피하며 살아간다. 일상의 구석구석, 시간의 그림자 속에서, 죽음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끝은 불가피하지만, 우리는 그 불가피함을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정직해진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마주하는 그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죽음은 우리의 끝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진정한 깊이를 드러내는 시작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섹스! 죽음!

그 옆에는 거짓말이 자리 잡고 있다. 



거짓말은 진실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슬며시 미소 짓는다. 진실은 언제나 무겁고, 그 무게는 우리를 외롭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옆에 거짓말을 두고, 그 무게를 덜어내려 한다. 작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 불편한 진실을 덮기 위한 거짓말들.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우리의 가장 깊은 불안을 드러낸다. 거짓말은 결코 진실을 완전히 숨길 수 없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진실과 마주한다. 글을 쓸 때 느낀다. 정직하지 않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그러니까, 전적으로 정직해지려는 훈련은, 우리가 말하지 않으려 애쓰는 그 진실을 드러낸다. 그 진실이야말로 우리를 정의한다.



그래서, 섹스! 죽음! 거짓말!

이 세 가지는 우리 삶의 어두운 강줄기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그 강물 속에서 헤매며, 가끔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때로는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려 한다. 그 흐름 속에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더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삶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이 수수께끼는 섹스, 죽음, 거짓말이라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도전한다.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본질적 노력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난, 이전 글(범재의 비애)에서 그 답을 찾지 못할 것이란 걸 느끼고 스스로를 범재라 칭했다. 하하.

그러나,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여정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더욱 전적으로 정직해지고자 한다. 

자신에게 전적으로 정직해지려는 그 훈련 자체가, 이미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글쓰기는 그 정직해지는 훈련 중 가장 강력한 도구일 것이다.



이 글은 좀 전 정이흔 작가님의 글을 읽고 쓴 글이다.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야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세벽 소설가님의 소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심사평에 나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었다. 




섹스, 죽음, 거짓말. 

이 세 가지 힘을 통해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덧. 키워드에 섹스라는 단어가 없다. 무척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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