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어 시를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 명료하고 분명한 것들만을 좋아했다. 세계는 물질적이고 논리적인 규칙들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았다. 15살의 나는 수학을 사랑했다. 수학은 내게 완벽한 위안을 주었다. 1 더하기 1은 2가 된다. 이 얼마나 확실한가. 수학은 나를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고요한 섬처럼 지켜주는 벽이었고, 1 더하기 1이 0이 되는 일은 내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이었다. 나는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탐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나는 그 벽 너머에 있는 세상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싫어했던 그 시절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정신의학자가 되어 시를 쓰고 있다. 어쩌다 내가 이 길을 걷게 되었을까? 내가 곰팡이의 생명력을 불쌍히 여기게 될 줄이야, 버섯의 아가미 속에서 무수히 많은 포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분명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 속에서 어떤 깊은 진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울림, 우주가 내 영혼에게 보내는 메아리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 나는 자연 속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속에서 어떤 진리를 본다.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커다란 흐름 속에 속해 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해한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으며, 그 속에는 숨겨진 질서와 의미가 있다. 곰팡이와 버섯, 그리고 그 포자들의 울부짖음 속에서도 나는 그 진리를 본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를 통해 존재하며,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니 어찌 이 세상을 단순한 물질적 규칙들로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는 내게 있어서 새로운 방식의 이해였다. 논리나 이성의 언어가 아닌, 직관과 감각의 언어였다. 시를 쓰면서 나는 내 안의 더 깊은 부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면의 진실을 탐구하고, 그 진실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했다. 시인이란 우주의 눈과 귀를 가진 자다. 나는 시를 통해 우주의 소리를 듣고, 우주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는 나를 논리의 벽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인도했다. 그것은 하나의 통로였다. 나와 우주 사이의, 나와 나 자신의 더 깊은 진리 사이의.
나는 이제 모든 것에서 시를 본다. 나무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돌 틈에서 자라는 작은 풀꽃에서, 도시의 거리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고, 모든 것에는 노래가 있다. 시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 속에 숨겨져 있다. 시인은 그 숨겨진 시를 발견하고, 그 시를 통해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도약해야 하며,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진리를 꿰뚫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더 이상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명확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1 더하기 1이 0이 될 수도 있는, 또는 무한대가 될 수도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 안에 진리가 있다. 그 안에 우리의 본질이 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깨닫는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시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숨겨진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시를 통해 나는 내 영혼의 울림을 듣고, 그 울림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본다. 그리고 나는 이해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이며, 우리는 그 하나 속에서 서로를 찾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내가 시인이 된 이유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사람이며, 그 세계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다.
우리들은 시인이었고, 시인이며, 곧 시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