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왜 시를 쓰는지 자주 생각해 보았다. 몇 번이고 곱씹어 봤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답을 찾는 대신, 그냥 시작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는 시가 좋다.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 어제 한향 시인의 시집이 집에 도착했을 때, 시집을 손에 쥔 순간 종이의 질감과 잉크 냄새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묘한 떨림. 그 시집이 참 좋다.
나는 시를 쓰는 게 좋다. 어제도 썼고, 그제도 썼다. 주말에는 꾹꾹 참는다. 마치 독한 술을 참아내듯, 시에 대한 갈증을 억누른다.
“왜 시를 쓰냐?” “정신과 의사가 그림 그리고 글을 쓰다니, 참 특이하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을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시집이 서가에 꽂혀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희미해졌다. 나는 그저 시가 좋아서, 그 재미에 홀려서 쓴다. 시를 쓰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신다. 마치 잘못 끼워진 퍼즐 조각처럼, 허전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시 쓰기를 멈추고 산문을 쓰기로 했다. 나는 왜 시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평생 알아내지 못할 '범재의 비애'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을 때조차 그 이유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답을 찾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요즘 브런치에서 소설을 자주 읽는다. 나는 공상과학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대하소설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한다. 무겁고 깊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나 자신을 꿈꾼다. 하하, 그럴 일은 없겠지. 나는 너무 많은 일을 한다. 평생 단 한 권의 장편소설이라도 남긴다면 좋겠다.
주말에 시 쓰기를 멈추면, 나는 소설의 구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떠오르는 이야기들은 죄다 슬퍼서, 인물들의 대화가 막힌 물꼬처럼 흐르지 않는다. 그저 혼자 끅끅대며 울다 지친다. “이건 대작이야, 내일 꼭 쓰겠어.” 다짐해도, 하룻밤 자고 나면 희미한 흔적들만 남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일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어두운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아차, 내 머리가 건강하지 못한 탓이지, 하고 이마를 친다. 하하하. 건강한 머리로 썼다고 생각한 글도 다음 날 보면 “이게 글이야?” 하며 머리를 다시 친다. 부끄러움 없이 세상에 내놓은 글들이 여전히 당당히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브런치 동료 작가님들 덕분이다.
이상, 범재의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