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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이 Nov 10. 2024

비틀거리며 허기진 시



살아남기 위해 시를 읽었다.

사망한 프로이트 옆에,

루미의 시를 접어 놓고.

부고장을 펼치듯,

괜히 심술이 나 시를 외면했다.



“나는 육식주의자라 시인이 될 수 없어,”

죽임 당한 것들을 씹고 삼키며

이를테면, 육즙 흐르는 고기를

욕심껏 소화하려 했다.



그런데 옆의 시들어간 양배추가

살며시 웃으며

“까꿍, 김소이? 시 안 읽고서 정말 살 만하니?”

하고 물어왔다.



나는 고기를 뜯고, 또 뜯으며
찐득한 기름 같은 콧물이 입가를 적실 때까지
끊임없이 삼켰다.



그러다 순진한 척 양배추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다시 시를 읽을까?”



양배추는 싸늘한 웃음으로,
“너의 고기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었을까?”
말끝에 은근히 정신분석학 책을 쳐내듯
빛바랜 잎사귀를 떨구었다.



그때, 프로이트가 책 속에서 튀어나오듯
굵고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이 모든 장면이,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보인 환영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생생해서,
아, 이제는 시를 잠시 놓고
진짜 휴식이 필요한 때임을 알았다.










  사실은, 시 쓰기를 그만두려 했습니다. 마우스와 키보드가 없는 작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이렇게 불편하니까 브런치스토리를 보지 않는 거야"라며 억지로 외면하려 했죠. 하지만 배가 고파졌습니다. 허기는 깊어지고, 몸은 점점 비틀거렸습니다. 덜 명확해진 마음으로 시를 쓰는 것이 싫었지만, 결국 배고픔에 떠밀려 다시 시를 꺼내 먹어버렸습니다.


  사실 시를 적는 게 아주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왜 쓰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배고파서 씁니다. 한 번 쓰고 나면 잠깐 속이 나아졌다가, 곧 다시 허기가 찾아옵니다. 하긴, 배고픈 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를 쓰지도, 읽지도 않을 때조차 계속해서 시가 마음을 맴돌았던 걸 이제야 인정하게 됩니다.


  침대에 편안히 누워, 갈등 없이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 대신 소설을 몇 편 써보기도 했습니다. 시와 마찬가지로 소설들도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었지만요. 카드 24장을 만들어 각 카드마다 키워드를 적어두고, 그중 6장을 뽑아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가까운 미래, 조력자, 적, 결말을 정해놓은 채 플롯을 짜서 소설을 썼습니다.


  늘 충동적으로 글을 쓰다가, 처음으로 계획된 플롯에 따라 글을 쓰려니 꾸덕꾸덕한 기름진 고기를 씹는 느낌이었습니다. 배는 불렀지만, 이상하게도 허기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하늘이, 죽어 있는 고기와 양배추를 바라봅니다. 

  저는 저 위 살아 있는 하늘들에게 외칩니다.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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