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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Mar 15. 2021

수선화와 조르바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어김없이 봄도 오고 수선화는 예쁘게 피었네요.”     


요즘 부쩍 봄꽃으로 수선화사진을 많이 만납니다. 

청취자 한분이 이런 문자와 수선화 일곱송이 곱게 핀 사진을 함께 보냈습니다. 수선화, 나르키소스! 

신화부터 떠오릅니다.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사랑한 요정 에코를 돌아보지도 않았다죠. 

결국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향한 목소리만 남고 말라 죽고 말았다는 거 

아닙니까?


다 사라져도 목소리만 남았다는 요정 에코, 애절했을 마음이 읽힙니다. 

아름답기만 했고 남의 마음을 배려할 줄 몰랐던 미소년은 

요정 에코와 똑같은 상황을 벌로 받게 됩니다. 

사랑은 하게 되지만 그 사랑의 답은 결코 받지 못하리라... 

주는 대로 받는 거죠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지지만 아무리 사랑을 표헌해도 답이 없자, 그를 향해 연못으로 뛰어들고 말았고, 그 자리에 미소년처럼 아름다운 꽃, 수선화가 피어났다고 해요. 

흔히 자신만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나르시시즘에 빠졌다고 합니다.

지나친 自己愛를 말하는 거겠죠.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얼마나 아름답길래 자신의 모습에 자신이 반하나’ 했어요. 

살아보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미소년은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이 

자신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라 여겼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를 사랑한 것이죠.      


이어지는 깨달음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도 봐 집니다. 

노랗고 가느다란 수선화는 오늘도 피어나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며

인간에게 사랑을 보여 주는데 

인간은 수선화나 자연을 향해 어떤 사랑을 보여주는지.

자기 자신인 자연을, 인간은 왜 몰라보는가.

우리도 지금 물속으로 뛰어들기 직전은 아닌지...     


수선화는 말없이 피어나지만, 

요정 에코 역시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사랑의 진리를 끝없이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는 것 같네요. 

마르고 닳도록. 

혹시라도 수선화와 메아리가 된 에코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았을까요? 

그랬기를 바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속 미도리가 수선화를 좋아한다 했던 것 같습니다.

미도리가 고교시절 축제에서 불렀다는 

Brothers Four의 팝송 ‘Seven Daffodiles’에서는 

‘크고 예쁜 걸 살 재산은 없지만

달빛을 엮어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드릴 수 있고, 

천 개의 언덕 위에 있는 아침을 보여드리고

키스와 일곱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가난한 애인의 달달한 프로포즈송같은 노래 속 수선화는 

참 소박합니다. 연못에 몸을 던진 나르키소스의 반성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스인 조르바는 비온뒤 야생수선화를 마치 처음 본 듯 보다가 대장에게 건네며 말하죠. 


“대장, 우리가 돌과 꽃, 그리고 비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마도 우리에게 소리치는데 못알아듣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이것들이 못 알아듣고요. 대장, 언제나 이 세상의 귀들이 뚫릴까요? 언제나 우리들 눈이 열려 사물들을 보게 될까요? 언제 우리가 팔을 벌려 돌과 꽃과 사람이 서로 껴안게 될까요? ”


자유인 조르바는 서로가 서로의 나르키소스이고 에코임을 말하고 있네요. 

눈앞에 있어도 못 보고, 아무리 말해도 못 듣는 자들이 

서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생을 살아가니까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어느 한순간, 서로가 서로의 외침을 알아듣고, 

눈이 열려 서로를 껴안게 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때문이겠죠. 

설사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네요. 

조르바처럼 늘 처음 본 듯, 처음 듣는 듯 만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올봄, 노란수선화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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