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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Feb 27. 2021

왜 노래만 불렀냐고?

어떤 피아니스트를  위한 분노

피아니스트가 물류센터에서 일한다고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손이 제일로 중요한 것 같은데...”     


최근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클래식음악인들에게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클래식음악을 방송하는 국영방송에서 몇십 주년 기념으로 지역음악인들의 연주를 들려주는 특집을 기획했다. 

그게 왜 화제가 되냐고? 당연한 일 아니냐고?     


부끄럽다. 보통 지역방송이 특집프로그램을 만들면 기존보다 제작비가 늘어난다. 그러면 평소에는 지역의 음악인들과 방송하다가도 이럴 때는 중앙에서 음악인들을 불러서 잔치(?)를 한다.      


어찌 보면 불문율같은 기획이다. 제작자들은 ‘대중이 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전국적인 스타들을 당연히 보고 싶어 할 거라는 판단이다. 사석에서라도 자신들 마음대로 판단했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주로 중앙에서 활동하는, 혹은 유명한 음악인들을 불러와서 실황이나 녹화로 연주하는 기획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속내는 이럴 것이다. ‘중앙에서 불러오면 방송사고만 안나면 평타는 친다니까.’      


국영방송에서 진짜로 지역음악인들의 연주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닷새에 걸쳐서 기획했다. 당연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영방송이니 해야 할 일이지만 전례가 없었던 탓인지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몸담은 방송국도 아니면서 막 SNS에 홍보까지 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나 대면연주가 힘들어진 1년동안 연주자들은 얼마나 맘 고생에 경제적인 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가니 더 감사했다.       


그런데 까무라칠 뻔했다. 이번 기획에 지역음악가들을 주로 연결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한분이 지역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데, 연결 되어 이번 방송연주회에 참가했다. 

이 젊은이가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숨이 막히는 착각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피아니스트의 유일한 수입원인 레슨 수강생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았고, 앉은 자리에서 딱 굶게 생긴 이 연주자는 물류센터로 향했다고 한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연주뿐인데, 연주나 연주를 가르치는 일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젊은 몸으로 물류센터에서 힘을 쓰는 일이었던 거다. 자신같은 사람은 없을 거라며 처절하게 속으로 울며 찾은 물류센터에는 신입들이 많더란다. 그런데 세상에! 물류센터의 신입들은 온통 예술가들이더란다. 피아니스트인 자신, 첼리스트, 화가, 조각가, 드러머...     


김장훈의 초기곡중에 <노래만 불렀지>가 있다.      


(생략)


영원한 사랑을 찾아 헤메어도 봤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병때문에

모두다 떠나가고 다시 혼자되어 

난 노래만 불렀지

기억할수는 없지만 울면서 불렀어     

눈물에 가려진 세상보며 난 노래를 불렀지

언제나 좋은 날을 꿈꾸면서 노래를 불렀지

이제는 다르게 살아볼까 생각도 많이했어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었지 그저 생각뿐이었어     

슬픈 날에도 하늘보며 난 노래만 불렀지

언제나 혼자되어 하늘보며 난 노래만 불렀어

첫사랑 떠난후에 그때도 난 노래만 불렀지

눈물은 자꾸만 흘러 내리는데 난 노래만 불렀어

다시 혼자되도 난 노래만 부를래

눈물로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난 노래만 부를래 이렇게...     


왜 이 노래가 떠올랐느냐고 묻지 마라. 

잘 불렀던 노래도 아닌데 그때나 지금 상황이나 찌릿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할 줄 아는 노래만 부르는 것이 왜 슬픈지 가수에게 물어보고 싶다. 

노래를 부르려면 밥도 먹어야 하고, 시간을 내고 여유를 가져서 곡과 노랫말도 써야 한다. 

배고픈 결핵환자가 희대의 명작을 내는 건, 중세시대의 이야기나 지어낸 것일뿐이다.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만 부르는 가수에게, 이 세상은 너무 야속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지 못하는 예술을 그저 손만으로, 창조하고 연주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너무 모질다. 

문외한이긴 하지만,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나, 붓이나 손가락으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은 손이 전부다. 손을 다치면 끝장이다. 팔이나 어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인들을 위한 재난지원금들도 꽤 된다고 들었다. 그런 돈은 다 어디로 가고 피아니스트를, 화가, 조각가를 물류센터로 모는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는 지원금을 받았을텐데, 선정과정에 문제 따위는 없었기를 바란다. 

물류센터가 안좋은 직업이라거나 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각기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손으로 뭔가 해야 하는 창의적인 작업을 가진 자들이 그 손을 다칠 수도 있는 일터로까지 향하게 한 이 상황에 분노가 치민다.      

왜 ‘노래만 불렀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먹고 살 궁리는 해 놔야지 않느냐고. 

이런 대답은 어떨까.

 ‘노래만 불렀던’사람의 노래여서 감동이 크고, ‘붓만 잡고 살았던’사람의 작품이어서 우리를 치유한다고. 

대충 남의 것 베끼고 조합하고, 제스추어만 화려하게 해서 하는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어서 감동따위 1도 없다고.  


그나저나 피아니스트가 제발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길 바란다. 가수도 이전처럼 '노래만 부르길' 바란다면 이게 아직은 굶지 않는 자의 욕심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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