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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May 03. 2023

색깔공감

최성원의 <색깔>

80년대 한국가요계의 비틀즈라 불렸던 ‘들국화’란 그룹이 있었다. 리드싱어였던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같은 곡은 이적이 불러서 드라마(응답하라 1994)에 다시 흐르기도 했다. 다른 구성원들 역시 훌륭하다. 손진태라든가, 허성욱 등도 그 뒤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또 다른 사람으로 최성원이 있다. 성시경의 보드라운 노래로 기억할 <제주도의 푸른 밤>을 만들고 처음 부른 사람이다. 정겨운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님이 그의 부친이시다.


 최성원은 독집도 냈는데, <색깔>이란 노래가 떠오른다. 가사의 일부이다.       


♬초록색깔이 나는 좋아 파란 색깔 있기에 / 주홍 색깔이 나는 좋아 빨간색깔 있기에/

이세상 모든 색 한색깔이면 오 그건 너무너무해 (중략)/ 그 색깔로만 칠하자고 자꾸 너는 우기고/ 이 색깔만이 좋다고 자꾸 나도 우기네♩    


초록이 좋은 이유는 이웃에 있는 파란 때문이다. 주홍이가 좋은 이유도 빨간아이때문이란다. 나와 다른 것이 내 눈에 보이면 늘 좋았는지 생각해본다. 별로였다. 달라서 많이 경계했다. 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런대로 좋았던 것도 있었다. 세상이 한 색깔일 수는 없다. 그렇게 한 색깔로만 덮어버리자고 우기던 세상이 막 지나고 이 노래가 나왔다. 그리고 수십년이 흘렀고... 하지만 여전히 이 노랫말은 유효하다. 개인이든 사회든. 


초록세상이 한창이다. 풀멍(?)이라도 때리면 집 나갔던 영혼도 돌아와서 안정을 찾는다. 숨을 고른 김에 초록세상을 열심히 들여다보자. 그냥 똑같은 초록이 아니다. 막 올라오는 새싹빛 연두, 연초록, 짙은 초록, 사계절 내내 같은 빛깔을 유지하던 소나무빛 청록잎사귀들도 있다. 보면 보인다.      


알고 보면 초록도 초록뿐만은 아니다.  밤새 합성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곳인 초록잎은 청록과 초록의 두 빛깔로 나눠지고 그 초록을 더 나누면 노랑과 주황도 나온다. (물감 만지는 사람들은 이미 아는 이야기겠다)

잎의 엽록소는 햇빛 속 빨강색 파장과 파란색 파장의 영역 대부분을 흡수해서 인간 눈앞에 초록만을 남긴다. 빛이나 색이 다 그렇다지?


특히 산소를 세균들은 빨강빛과 파랑빛에서 잘 노는데, 광합성을 해야 하는 잎사귀 속 엽록소는 빨강파랑빛이  이들을 죄다 당겨먹고 초록빛만 뎅그라니 남겨놓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 식물에게는 빨강파장과 파랑파장이 필수식량인 셈이다. 내가 사랑하는 초록빛은 엽록소가 빨강파랑보다 싫어해서 뱉어낸 것이었나. 진정 몰랐다.  이것도 오해일 수 있겠지만. 

  

두 세기를 걸쳐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나온 화두를 꼽으라면 뭘까. 소통과 공감 정도이다. 아주 그냥 수십년 째 여의도 정치인은 물론이고 아파트 동대표 연설에도 등장하는 단어다. 들을 때마다 ‘공감’한다. ‘아, 아직도 이 단어들이 계속 나오는 걸 보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통이 안되는 사회인지, 공감력이 약한 집단인지 알겠구나….’      


그건 절반 넘게 순진한 오해였다. 소통과 공감은 잘 되고 있었다. 단,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구성원끼리의 소통과 공감만이다. 한두 줄로 딱 정리가 되는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집단 끼리의 소통은 너무도 잘 되고 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타인과 함께 느끼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능력이 공감이라면, 내가 속한 집단과 구성원뿐 아니라 타인과 다른 집단을 향한 공감을 위해서도 애를 써야 한다. 그러려면 그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하는데, 다들 그럴 생각이 많지 않아 보인다.  피곤하니까. 멀리 보기 싫으니까. 

 

빛깔로 예를 든다면 빨강은 파랑에 공감하지 않는다. 파랑 역시 빨강과 소통하기를 원치 않는다. 초록은 좋아하면서 초록이 드러나기전 흡수돼 단백질이 되는 빨강과 파랑 따위는 아예 알아볼 생각조차 없다. 주황이나 노랑도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한가지로는 생존이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노랫말처럼 ♩그 색깔로만 칠하자고 자꾸 너는 우기고 /이 색깔만이 좋다고 자꾸 나도 우기고♬ 만 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소통이나 공감을 통한 타인 마음읽기의 힘이 인류공동체가 살아남은 필살기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멸망을 원치 않는다면 끼리끼리가 아니라 더 넓게, 저 반대편에 있는 타인 마음읽기도 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여전히 초록세상이 한참동안 이어지겠지만, 인간세상의  ‘초록은 동색’이며 ‘유유상종’같은 한 줄짜리 고정관념만으론 결코 정의될 수 없는 다양한 빛과 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세상온통 가득차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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