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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Feb 16. 2021

시를 위한 시

시를 위한 어떤 것

이창동감독의 영화 <시>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 미자의 손자가 성희롱을 한 후, 자살한 여학생 희진의 시체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강가로 시체가 떠내려오고, 그 옆으로 영화 제목이 쓰인다.

<시>.

영화가 끝나니, 그 시작장면이야말로,

시가 죽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죽음을 쓰는 시이야기기도 한 영화의 큰 주제였던 것 같다.

영화속 알츠하이머 환자로 진단받은 미자, 배우 윤정희는

단어도 잊고 곧 문장도 잊을 거라고 진단받지만,

어쩐 일인지, 시교실에서 시를 배우고 쓰기 시작한다.

시인들은 술자리에서 마저 시는 죽었다며 시를 쓰지 않겠다고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인 미자는 시를 쓰겠다고 한다.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눈으로 보는 일들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시로 쓰기 위해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고 쓴다.

하필, 손자에게 성희롱당해 자살한 소녀에 관한 시를 쓰고 싶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소녀의 그 느낌을 이해하려고 다양한 경험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영화는 2010년에 개봉하고 상도 받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 한참 뒤에 알려졌다.

2018년인가, 배우 윤정희가 알츠하이머 환자인 채로 영화 <시>를 찍었다고 했다.

그당시야 초기였겠지만, 배우가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촬영했을까 생각하니,

그의 삶 자체로 영화를 찍었으니, 그의 투병하는 삶이 영화자체였을까 싶기도 했다.

시인은 '시'라고 말하겠지.



시를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백일장에 나가서 시를 꽤 썼다.

제법 참방, 차하 이런 상도 받았던 것 같은데, 그게 시가 아니었던 것일까?

지금은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렵고 힘들다.

당최 시인들이 비유하거나 은유해놓은 것들, 이미지들,

조합하기도 어렵고, 느낌이 오지 않는다.

자꾸 시를 읽으라는데,

시에 대해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써 놓은 글을 보면

고개가 끄덕끄덕해긴 하는데, 그냥 시만 읽어서는 정말 모르겠다.


시에 대해 설명을 잘 해놓은 시 사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지,

시를 사전처럼 써놓은 책이 있다고 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건 시에다가 또다른 시를 한편 더해 놓은 것 같다. 역시 내게는 어려웠다.

아, 시를 포기해야 하나...


얼마전, 배우 윤정희가 외롭고 버려진 채 투병생활을 한다고 한국의 가족들이 언론을 통해

알렸다. 재산문제는 아니지만 뭔가 갈등이 있어 보였다.

병증이 심각한 상태인 모양인데, 긴 병에 효자없다고

짐작은 가고도 남음이 있다. 사실은 모르는 일이고.


다시 윤정희 배우의 영화 <시>가 떠올라 며칠째 심란했다.

배우가 촬영한, 어쩌면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작품이

자신의 병증을 안고 그 병을 연기했다는 것이 너무도 슬프고 아프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온다. 이게 시를 느끼게 되는 지점일까?


문득 이문세의 노래, 이영훈 작사작곡, <시를 위한 시>가 그냥 흘러 나온다.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께

(중략)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 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께


윤정희 배우라는 별이 사라져가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고

영화 <시>에서 자신의 현재 삶을 연기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할 줄 아는 연기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표현하며

배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하다.

 

배우가 아닌 우리는

할 줄 아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 생을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병까지도 연기하며 영화를 찍는 일처럼,

안좋은 경험을 다해보고 쓴  <시>라는 영화속 시, '아네스의 노래'처럼,

노래 <시를 위한 시>도 되고,

<생을 위한 생>도 되는 것일까.   

시나 삶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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