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젝의 블랙홀
이유도 알 수 없는 리젝(reject)의 블랙홀로 빠진 경험을 디자이너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철야는 일상이고, 택시 영수증은 훈장이다. 오케이 사인을 받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의 컨펌을 숙명처럼 여겼다. 팀장에게 시안을 보내 놓고 기도와 함께 마시는 커피는 청심환이다. '다시' 두 글자의 응답은 모든 긴장과 기대를 부수고 한 층 더 깊은 구덩이로 나를 던져버린다.
어떠한 코멘트도 달리지 않은 채 느닷없이 던져지는 ‘다시’로 인해 원망의 대상은 늘 팀장이었다. 점점 초점이 흐려지며 누구를 위한 연속의 과정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결국 컨펌을 위한 꼼수를 잔뜩 습득하고선, 그것이 훈장인 것처럼 후배에게 꼰대의 맛을 되물려준다.
얼마 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재직 중인 회사의 팀장이 1px에도 매우 민감한 '디테일 변태'라는 것이다.
그 스스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것이 프로덕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테일'의 탈을 쓴 구태의연한 꼰대의 또 다른 유형일 뿐이다.
그렇다고 디테일을 꼬집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충분한 고민은 마땅히 해야 한다.
확연하게 그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1px 라인의 작은 차이로도 유저에게 버튼임을 명확하게 인지 시킬 수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대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디테일이다.
유저가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디테일이라면,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간단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수치로는 정확한 중앙이지만 시각적으로 중앙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에는 시각적 중앙을 맞추기 위해 미러링 된 화면을 보면서 조정을 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우선순위 높은 작업은 아니지만 ‘이유 있는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채용을 위해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다 보면 디테일의 차이가 당락을 결정하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플레이팅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재료 손질이 잘 된 요리에 한 번 더 눈이 간다. 유저를 생각하는 디테일은 누구라도 그 정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높은 산에 등산로를 개척하는 선발대다. 선발대를 따라 올라 올 유저를 위해 어떤 길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나가는 길 위의 풀이 어떤 모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유저는 그 풀을 보지도 않는다.
꼬투리를 잡아 길게 늘어트릴 시간에 한 명의 유저를 더 생각하는 것이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일을 하는 것다. 디자이너의 의도가 유저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고심할 시간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