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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 Dec 16. 2020

혼란과 격동의 보고타(Bogota)

칸쿤에서 출발하여 약 3시간 만에 콜롬비아 보고타에 도착했다. 콜롬비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약 아닐까? 우리의 머릿속엔 마약 천국, 마약 카르텔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는 곳, 도심에서 총싸움이 일어나는 곳 등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약, 살인, 총기사고 등 우리를 위협하는 단어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콜롬비아를 일정에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찰스와 나는 엄청난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지희에게 들었던 ‘카르타헤나’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했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보고타를 거쳐야만 했다. 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보테로(Fernando Botero)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모나리자>를 비롯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또한 산크리스토발에서 만났던 여러 여행자들이 보고타를 굉장히 세련되고 좋은 도시로 묘사 해 주어 보고타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살짝 기대감도 있었던 보고타! 보고타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우리가 예약한 <은혜네 민박>으로 가는 길에 처음 맞닥뜨린 보고타의 첫인상은 아... 글쎄... 이걸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하지... 골목으로 들어 갈수록 지저분한 거리, 날씨는 맑았으나 밝지 않은 이상한 분위기(아마 고산지역 특유의 분위기였던 것 같다). 가뜩이나 우리는 멕시코의 최고 휴양지인 칸쿤(플라야 델 까르멘)에서 왔기 때문에 도시의 분위기가 더욱더 어둡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찰스와 나는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빛으로 ‘망했다’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첫인상이 끝 인상이 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우리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보고타는 해발고도가 꽤나 높은 곳이다. 볼리비아 라파즈, 에콰도르 키토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해발고도가 높은 대도시이다. 두통에 꽤나 민감한 나는 보고타에 도착하기 전부터 고산병 약을 챙겨 먹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이곳에서는 숨 쉬는 것이 많이 신경 쓰일 정도였다. 해발고도가 0m인 칸쿤에서 왔으니 고도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빨리 하면 곧 숨을 쉬는데 부담이 왔고 심지어 침대에 누워서도 숨쉬기가 편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 꺼려졌다. 매일 오후가 되면 엄청난 비가 한차례씩 쏟아지고, 밖으로 나가면 걷기도 힘들고 게다가 심각한 매연 또한 우리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데 한몫을 하였다. 보고타의 매연은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만큼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현지에 사시는 분들은 미세먼지를 잘 느끼지 못하셨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공기가 좋다고 하셨다. 그동안 매연이 없던 멕시코의 시골 동네들만 돌아다녀서인지 벌써 한국의 미세먼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고산 증상에 심한 매연까지 나의 컨디션은 거의 최악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보고타에 머무는 동안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민박집 안에서 거의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며 한 3일 정도를 보냈다. 멕시코에서 신나게 한 달간 돌아다닌 후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 중에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약 한 달간을 쉬지 않고 돌아다녔으니, 피로가 누적될 만도 했던 것 같다.


우리가 머물렀던 시기의 보고타는 엄청난 혼란의 시기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은 보고타 시내에서 최대 규모의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무서운 나라에서 시위까지 일어난다니... 우리는 아예 시내에 나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최대 규모의 시위에서 3명 정도의 사망자가 생기고 시내 곳곳에서는 방화와 약탈이 일어났다고 했다. 실제로 남미 여행자 단톡방에는 숙소에서 찍은 동영상이라며 방화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은혜네 민박집 큰딸과 둘째가 현지 대학생 및 고등학생이라 우리는 빠르고 정확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시위가 있던 당일과 다음날은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이었던 Moises는 문자로 우리의 안전을 확인하며 엄청 걱정했고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우리가 보고타가 아닌 상대적으로 시위가 덜했던 그가 살고 있는 메데진에 왔어야 한다며 많은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은혜네 민박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비교적 시내와 거리가 있는 꽤 안전한 동네였다. 그래서 우리는 집이 가장 안전하다며 집 근처 마트와 카페 정도만 돌아다녔던 것 같다. 


보고타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전문점이 '후안 발데스 커피'



동네를 돌아다니다 들어간 식당에서. 가격이 상상 이상으로 저렴해서 깜짝 놀라고 맛있어서 깜짝 놀람. 나의 스페인어 실력이 형편 없었지만 다행히 원하는 음식이 나왔다.



시위가 일어난 후 이틀 후쯤인가 시내가 잠잠해졌다고 생각한 우리는 그래도 보고타에 와서 하루쯤은 시내 구경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볼리바르 광장이 있는 역사지구에 다녀오기로 했다. 볼리바르 광장 근처에는 보테로 박물관 및 황금 박물관 등이 있어서 관광도 할 겸 맛있는 음식도 먹어볼 겸 해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우버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우버 기사가 우리가 관광객임을 알고 그랬느지는 모르겠지만 몬세라떼 언덕이 있는 쪽으로 하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길을 이용하여 우리를 역사지구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치 일부러 드라이브를 하는 것 같이 길도 좋았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일일투어를 하는 느낌이었다. 


역사지구를 걸으며 맛난 음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시내 곳곳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보테로 미술관에 가서 <모나리자>와 여러 장의 사진을 찍으며 오랜만에 여행 온 기분을 느꼈다. 보고타에서 가장 볼만 하다는 황금박물관에 갔으나 시위대로 인하여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 표지판을 보고 적잖은 실망을 하기도 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


엄청난 비가 쏟아지던 황금 박물관 앞


그러던 중 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니 갑자기 앞도 보이지 않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소용없는 엄청난 빗줄기였다. 우리는 황급히 황금박물관 건물 앞으로 피신을 했고 그곳에서 하염없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빗속에서 마이클잭슨(의 흉내를 내는 사람)이 나타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사람들이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 그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빗속에서 마이클잭슨과 똑같이 춤을 췄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는 너무 환상적인 그의 춤과 퍼포먼스에 넋을 잃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고생한 그를 생각하면 팁이라도 줘야 했는데, 그곳에는 약간 수상한 사람들도 많고 해서 선뜻 지갑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멋있는 공연을 감상하고 돈 한 푼 내지 않은 것이 참 미안하다. 


비가 거의 그치고 우리는 집에 돌아가려고 우버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역사지구 근처에는 우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우버가 가장 많이 있어야 할 곳에 우버가 왜 이렇게 없지? 좀 더 큰길로 나가보기로 한 우리는 우버를 검색하며 처음 도착했던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심부로 향할수록 손에 냄비와 프라이팬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보테로 미술관 근처에 도착할 때쯤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중남미 사람들은 시위를 할 때 냄비나 프라이팬을 막대로 두드리며 중남미 국가 특유의 시위 '카세롤라소'(cacerolazo)를 펼치며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우리는 엊그제 일어난 시위의 여파로 아직까지 사람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더니 기자들이 카메라와 사다리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고, 곳곳에는 경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우리는 그때까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늘도 뭘 하려나?’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구경하고 길에서 한가로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의 시위를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생각하여 별로 위험하지 않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우버 예약을 시도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버는 잡힐 생각을 하지 않고, 가격은 점점 더 올라가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우버를 예약할 수 있었고, 한 10분쯤 후에 도착한 우버를 타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는 트럭을 잡아타고 짐칸에 겨우겨우 올라타고 시내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우리의 버스와 같은 트랜스 밀레니오(Trans milenio)는 운영을 중단했는지 사람들이 트랜스 밀레니오 전용 길로 줄지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야 찰스와 나는 아... 사태가 무지 심각하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오자 사장님과 가족들이 우리를 엄청 반기며 하루 종일 걱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시내에서 큰 시위가 있을 예정이며, 시내에서 들어오는 교통편이 다 끊겨서 사람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가 우버를 타고 집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라고 했다.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이번에도 역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계속해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민박집에 같이 머무르고 있던 다른 한분도 시내에 나갔다가 못 돌아올 것 같아서 아예 시내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올까 생각하기도 했단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그리 태평하게 우버를 잡을 수 있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상황을 알았더라면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큰 일을 겪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통행금지가 내려졌고 밤새 거리 곳곳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부딪히기도 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동네 상점들도 거의 문을 열지 않았고,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방 안에서 드라마 시청을 하며 보고타를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중에는 많은 일들을 겪기 마련이지만 막상 반정부 시위와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어의 한계로 현지의 소식들을 바로바로 접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행히 현지 민박 사장님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빨리 콜롬비아의 정세가 안정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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