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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Dec 15. 2022

꿀유자청

쉬어가기 - 하현달

 - 사장님! 혹시 유자 있어요?

 - 에이, 아직은 안 나오죠.

 - 아, 그럼 언제쯤 나와요?

 - 11월 중순은 돼야 들어올 거예요.


최근 이런 흐름의 대화가 잦다. 장소는 주로 시장 중앙에 있는 과일가게 앞. 마트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라도 시장을 둘러보면 한 두 군데에서는 취급하기 때문에,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찾게 된다.


다만 시즌에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내려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시즌보다 빠르게 재료를 구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과일가게 사장님과 대화를 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사장님은 없는 물건을 찾는 손님에게도 친절하시다.


한 번의 퇴짜 후, 사장님이 일러주신 날짜에 맞춰 과일가게를 다시 찾았다. 나의 질문이 유효했는지, 여느 가게보다 빠르게 유자가 진열되어 있었다.

이렇게 애타게 유자를 찾아 헤맨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유자청을 담기 위함이다. 겨울에 잘 어울린다는 이유도 있지만, 베이킹의 재료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열정을 다 이해하기엔 역부족인지, 동생은 청 만들기에 재미를 붙였냐며 잔소리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랑곳하지 않고 유자를 다듬는다. 어딘가에서 본 방법으로 과육과 껍질을 분리하고, 과육의 씨앗을 제거한다. 유자는 씨앗이 부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걸 발라내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껍질도 하나하나 얇게 채 썬다. 참으로 손이 많이 간다.

마지막으로, 여느 과일청이 그러하듯, 유자와 같은 양의 설탕을 준비하자. 일부는 꿀로 대체해도 좋다. 준비된 재료를 소독한 병에 켜켜이 쌓아 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유자청의 테마곡을 흥얼거린다.


제목은 브로콜리 너마저유자차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일주일 정도 서늘한 곳에 두면 유자 껍질이 설탕을 머금으며 투명하게 변한다. 유자의 향도 강하게 변한다. 그럼 따뜻하게 차로 즐겨도 좋다. 물론 차갑게 에이드로 즐기는 것도 영이다.


좋았던 기억이 이렇게 어여쁜 샛노란색이라면, 꺼내어 보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노래 가사처럼, 이 차를 다 먹 날이면 거짓말처럼 따듯한 봄날이 우릴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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