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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Sep 05. 2023

두 번째 편지

2023.08.29. - 유자가, 0에게

0에게,


편지를 받고 조금 놀랐어. 이 사람은 나의 어떤 모습을 이렇게까지 좋게 보아준 걸까. 0을 만나고 난 뒤로 나는 줄곧 내가 더 나빠져가는 건 아닐까, 나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고민했거든. 이 회사에 오고부터 나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0은 나에게 이 회사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알고 싶은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그 사람이 만들었다는 자료가, 그 사람의 옷이, 말투가 궁금해졌고, 조금 뒤에는 그 사람이 가꾼 공간과 듣는 음악이 재미있었어. 그렇게 알게 된 0은 지나간 말과 행동을 성찰하는 사람이고, 쉬운 길과 옳은 길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줬다면, 지난 오 년을 어쩌면 잘 보내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러다가 떠올린 건, 0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잖아. 어쩌면 필연적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그를 보다 아름답게 바라보고 구현하는 사람. 작은 순간도 흘려보내 놓치지 않고 두 손으로 감각하려 애쓰면서.

어떤 연유이든 나는 0이 나를 좋아해 주어서 기쁘고, 0의 카메라에 들어갈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


시간을 들여 지켜보고 애쓰기 때문에 고민이 긴 0인데, 최근에 선뜻 큰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놀랍지 않았던 건 그게 오래된 결정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일은 많겠지만 그 시간을 쌓아 어딘가 새로운 곳에 기어코 도달하고자 하는 0을 나는 계속 지켜보고 싶어. 아무리 막막한 곳에 있어도 ‘이게 다가 아니야‘ 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좋아하니까.


지금 0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그 결과에 닿기까지는 알 수 없겠지. 명확한 것은 결정을 위해 지금 치러야 하는 비용뿐. 하지만 그 불공정한 인생의 대차대조표 앞에서도 감내하고 나아가 다른 미래를 보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그게 0이 아니더라도 사랑스럽고 경탄스러운 특성이야. 그래서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0이라는 친구이자 동료이자 선배를 좋아해.


지난 오 년을, 때로는 내 앞에서 때로는 내 곁에서 걷는 언니들과 동료들의 손을 잡고 나아갔고, 거기엔 당연히 0이 있었어. 그 손길이 또 나를 새로운 곳으로 자꾸자꾸 보내주었지. 지금부터 0이 열어가는 세상은 또 어디로 향할까. 오늘의 이 결정은 우리를 어디로 이어줄까. 결국 나에게는 그 자매들의 손이 남는다는 걸 반복해서 깨달아.


0의 카메라가 비추는 세상이 나는 아직도 궁금해.



- 유자


 p.s. 노파심에서 하는 말. 내 편지 말투가 올드하다고 해서 0의 편지가 그럴 필요는 없어. 난 어쨌든 세련된 사람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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